▲ 미국 시애틀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로에너지건축물(ZEB)' 불릿센터의 지붕에는 575개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불릿센터 홈페이지> |
[비즈니스포스트] "이제 문제는 불릿센터를 천 개, 백만 개로 복제하는 방법이다."
데니스 헤이즈 불릿재단 CEO는 불릿센터 공식 홈페이지에 남긴 메시지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불릿센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로에너지건축물(ZEB, Zero Energy Building)'이다. 2013년 4월22일 지구의 날에 맞춰 문을 연 뒤 10년이 흐른 지금도 친환경 건축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헤이즈 CEO는 건물 자체보다 더 큰 태양광 패널 지붕을 쓴 6층 높이의 사무실 건물 불릿센터를 준공한 뒤 "세계적으로 친환경 건축이 놀랍게 발전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100년, 심지어 20년의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세계에는 지속가능한 도시가 없고, 지속가능한 건물은 단지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0일 한국에너지공단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현황 자료에 따르면 9일 기준 한국에서 제로에너지건축물 본인증을 받은 건물은 모두 508개다. 건물 설계단계에서 건물에너지해석 프로그램을 통해 제로에너지건축물 예비인증을 받은 건물(2716개)까지 더하면 3200여 개 남짓이다.
2022년 기준 전국 건축물 수는 735만4340개다. 지난해 한 해에만도 건물 4만여 동이 새로 지어졌다.
한국이 친환경 건축부문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2020년만 해도 제로에너지건축물 본인증을 받은 건물이 30개가 채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히 시장의 변화는 빨라지고 있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벽체나 창호 등의 기능을 고도화해 외부로 손실되는 에너지양을 최소화하고 태양열,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냉·난방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충당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건물을 말한다.
한국은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 한국 정부의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화 로드맵. <한국에너지공사> |
한국 정부는 시애틀 불릿센터가 문을 연 2013년의 1년 뒤인 2014년 제로에너지건축물 활성화 방안을 포함해 녹색건축물과 관련된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2017년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2020년에는 연면적 1천㎡ 이상의 공공건축물에 제로에너지인증(5등급)을 의무화했다. 2023년에는 공공 500㎡ 이상 건축물(5등급), 공공 공동주택 30세대 이상(5등급)으로, 2025년에는 민간 건축물로 인증 의무화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서울시는 지난해 정부 계획보다 한 발 앞서 당장 올해부터 민간 신축 건축물에 제로에너지 인증을 의무화한다는 목표를 내놓고 9일에는 '저탄소 건물지원센터' 홈페이지도 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온실가스 배출양의 약 70%가 건물부문 온실가스로 파악된다. 서울시는 저탄소 건물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저탄소건물 100만 호 전환사업', '건물 온실가스 총량제'와 같은 정책부터 민간 건물에너지 효율화 관련 무이자 융자, 보조금 신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건설산업 주관기관인 국토교통부도 최근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 일부 개정고시안 시행에 들어가면서 제로에너지건축물 등 녹색건축시장 활성화에 힘을 싣고 있다.
이번 개정고시안에는 녹색건축물 인증을 받으면 용적률과 높이 완화 혜택을 모두 최대 15%까지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다.
건설사 등 현장에서 지적해왔던 녹색건축물 건설의 사업성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실제 친환경 건축은 건설사들에게도 세계적 기후변화 문제에 따른 산업변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측면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쌍용건설은 최근 탄소중립도시 실현에 초점을 맞춰 광명시에서 진행하는 광명철산한신아파트 리모델링사업을 그린리모델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는 2023년 신년사에서 공동주택뿐만 아니라 오피스 그린리모델링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고성능 창호, 단열재 등을 써야 하는 제로에너지건축물은 일반 건축물과 비교해 건설 비용이 비싼 만큼 정부가 녹색건축에 인센티브 등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건설사들은 지난해 국토부 주최로 진행된 그린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도 정책방향에 관한 공감과 별도로 실제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과감한 인센티브와 무리한 인허가 절차 등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 미국 시애틀 불릿센터에는 자전거 주차장(오른쪽)이 있다.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모습(왼쪽). <불릿센터 홈페이지> |
미국 시애틀 불릿센터만 봐도 사업을 주도한 비영리단체 불릿재단 외 시애틀의 많은 공공기관이 프로젝트 파트너로 힘을 모아 탄생했다.
시애틀시의 기획개발부는 '살아있는 건물'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건축법까지 개정해 프로젝트 초기부터 불릿센터 건설을 지원했다. 불릿센터는 실제 미국 비영리조직 국제생활미래연구소의 지속가능한 건물 인증 프로그램인 '살아있는 건물 챌린지' 인증도 받았다.
시애틀시 교통부는 공공녹지 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시애틀시가 속해 있는 워싱턴주 공중보건부는 불릿센터의 물 정화 시스템 구축을 지원했다.
불릿센터는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자체 생산할뿐 아니라 건물 부지에 떨어지는 빗물을 저수조에서 식수로 처리해 건물에 필요한 물도 자체적으로 공급한다.
불릿센터는 우선 건물 지붕에 태양광 패널 575개를 얹어 건물이 연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불릿센터는 자체 정화 시스템으로 평균 물 사용량도 일반적 다른 상업용 건물의 5% 수준이라고 한다.
불릿센터 내부는 불필요한 조명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자연 채광 중심으로 설계됐고 화장실의 배설물도 퇴비로 재탄생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동에서 오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별도의 자전거 주차장도 있다.
건물을 건설하는 과정의 탄소배출량도 줄였다. 이에 따라 불릿센터는 탄소배출이 많은 자재인 콘크리트는 건물 하중을 견디기 위해 꼭 필요한 바닥부분에만 사용했다. 건물의 2층부터는 FSC인증(책임있는 방식으로 관리되는 숲에서 생산한 제품)을 받은 목재를 활용했다.
불릿재단은 3천만 달러 자금을 조달해 불릿센터를 만들면서 수명이 250년인 건물이라고 말했다. 불릿센터는 올해 운영 10주년을 맞이한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