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이 아이폰에 중국 YMTC의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사용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큰 논란이 빚어졌다. YMTC의 3D낸드 기반 메모리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애플은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 YMTC의 안보 위험을 알면서도 반도체 구매 계획을 강행한다면 연방정부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의 강력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미국 야당인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2022년 9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표현으로 애플의 중국산 반도체 구매에 대해 경고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에 결정적 계기로 자리잡은 사건의 중심에는 애플이 있다. 아이폰에 사용하는 낸드플래시를 중국 기업인 YMTC에서 사들이려 한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중국산 반도체 구매에는 여당인 민주당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도 미국 상무부를 향해 이를 우려하고 있다는 의견을 전하며 YMTC를 겨냥한 미국 정부의 규제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애플은 YMTC의 메모리반도체 조달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고, 바이든 정부는 곧이어 YMTC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 기업을 겨냥한 더 강력한 수출 규제 조치를 내놓았다.
YMTC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이 낳은 ‘챔피언’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낸드플래시 핵심 기술인 3D낸드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상위 업체를 빠른 속도로 추격한 데 따른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 등 기기에 사용하는 부품의 품질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신생 반도체기업에 해당하는 YMTC가 낸드플래시 공급사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반도체 시장과 세계 전자업계에도 모두 충격을 안길 만한 사건이었다.
먼 미래의 일로만 예상됐던 중국의 반도체 공세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자국 기업 지원에 쏟아부은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허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가 20년 넘게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SK하이닉스와 웨스턴디지털, 키오시아와 마이크론 등 소수 업체와 함께 과점하고 있던 시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YMTC와 같은 기업이 ‘다크호스’로 급성장해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을 촉발한다면 모든 업체가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애플 등 주요 고객사에 판매하던 기존 반도체 기업의 물량을 YMTC가 빼앗아 간다는 것은 더욱 직접적인 타격을 의미한다.
그러나 YMTC가 이러한 기술 성과를 적극적으로 앞세우면서 성장세를 과시하던 시점은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향한 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려던 시기와 일치했다. 애플에 반도체 공급이 미국 정치권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되면서 역효과를 낳게 된 셈이다.
▲ 중국 YMTC의 3D낸드 반도체 생산공장. |
바이든 정부는 결국 YMTC를 블랙리스트 기업에 포함해 별도의 허가 없이 미국의 부품과 반도체 장비 등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하는 강도 높은 규제를 내놓았다. YMTC가 더 이상 생산 투자를 진행하기 어렵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삼성전자에도 중요하다. YMTC의 급성장은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분명한 실체가 있는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었다. 중국이 반도체 육성 정책에 자신감을 찾아 YMTC의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삼성전자가 장기간 주도해 오던 시장 판도에 큰 변화가 불가피했다.
YMTC는 최신 3D낸드 기반의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며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선두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던 고성능 SSD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효과를 나타내면서 이러한 목표도 사실상 무효화되고 말았다.
다만 YMTC가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 일이 단기적으로 시설 투자 및 생산 확대를 자극해 메모리 공급 과잉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 포함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할 때부터 YMTC가 대량의 반도체 장비를 사들인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YMTC는 2022년 하반기부터 수개월에 걸쳐 반도체 장비와 소재 물량을 대규모로 축적해 당분간 공격적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이는 최소한 1년에 걸쳐 신규 생산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분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위기와 소비 위축으로 반도체 업황이 장기간 침체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3년은 YMTC가 이러한 물량 공세 전략을 시험하기에 적기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기업이 모두 수익성을 고려해 투자 축소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위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은 YMTC와 같은 후발주자가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YMTC가 수익성보다 시장 지배력을 우선순위에 두고 물량 공세를 이어가는 ‘치킨게임’을 주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시장에서 발생하는 치킨게임은 업황 침체기를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도록 할 수 있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삼성전자도 자연히 YMTC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 업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치킨게임에 동참하며 반도체 생산량을 다시 확대한다면 메모리 업황이 더욱 악화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면 YMTC의 물량공세를 무시하고 수익성 중심의 전략을 유지한다면 다수의 고객사를 빼앗기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다만 미국 정부 규제의 효과를 고려한다면 YMTC의 이런 전략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YMTC가 이미 경영난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 등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도 투자 확대 가능성에 의문을 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삼성전자가 당분간 반도체 투자와 생산 확대 계획을 두고 진퇴양난에 빠지겠지만 YMTC가 기술 개발과 투자에 한계를 직면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지배력은 굳건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4부 - 삼성 vs CHINA
(2)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 '선택의 시간', 미중 갈등에 고심
(3) 중국 메모리반도체 물량공세 위협, 삼성전자 부담 키워
(4) 미국 중국의 반도체 파운드리 정조준, TSMC 추격 어려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