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예상보다 더 추운 ‘반도체 겨울’을 맞이하면서도 설비투자를 축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은 ‘위기를 더 좋은 기회’로 만들기 위해 반도체 치킨게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분석된다.
 
[오늘Who] 삼성전자 투자 계획대로, 경계현 적자 감내 이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이 2023년 적자전환을 감내하면서도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해 경쟁사와 기술격차를 벌려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이날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기존 예상과 달리 지난해 공격적인 설비투자 기조를 2023년에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줄어들고 있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은 2022년 4분기 영업이익 2700억 원을 내며 겨우 적자전환을 겨우 면했고 2023년 1분기부터는 영업손실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방산업 부진에 따른 고객사들의 재고 축소 의지가 아직은 강한 것으로 판단되며 2023년 수요 회복 시점이 좀 더 늦어질 수 있다”며 “삼성전자 DS부문은 2023년 1분기 504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2023년 한 해 2조1430억 원의 영업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2023년 영업손실이 현실화한다면 14년 만에 적자전환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적자전환을 감수하면서까지 설비투자 규모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반도체 치킨게임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메모리반도체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기술경쟁력 측면에서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같은 경쟁자와 격차가 상당부분 좁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조차도 지난해 “5년 전만 해도 메모리반도체에서 경쟁사와 격차가 많이 있었는데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처럼 격차가 줄어든 것은 메모리반도체 호황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후발주자들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연구개발(R&D)과 설비 등에 많은 자금을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반도체 업황의 겨울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없는 업체들은 더 이상 연구개발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4분기 7년 만에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하자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 수를 약 10% 줄이는 동시에 2023년 설비투자 계획도 기존 80억 달러에서 70억~75억 달러로 축소했다. 이는 2022년 설비 투자 규모보다도 35% 감소하는 것이다.

게다가 마이크론은 첨단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공정 도입도 최대한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대당 2천억 원에 이르는 첨단장비로 현재 삼성전자는 51대를 보유한 반면 마이크론은 2대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만약 마이크론이 2023년 대규모 적자 늪에 빠지게 된다면 EUV장비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은 부담이 매우 커 2024년부터 EUV를 D램 생산에 활용하겠다는 기존 계획도 늦춰질 공산이 크다.
 
[오늘Who] 삼성전자 투자 계획대로, 경계현 적자 감내 이유 있다

▲ 마이크론과 달리 삼성전자는 극자외선(EUV) 공정을 활용한 D램 양산을 2020년부터 진행하며 생산 노하우를 가장 많이 확보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20년부터 D램 공정에 EUV 장비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얻어진 표본과 데이터의 양이 경쟁업체와 비교해 압도적인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향후 EUV를 활용한 D램 양산이 생산성을 갖추게 된다면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초격차(따라올 수 없는 격차) 전략이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다.

다만 EUV 장비를 계속 수급해 라인을 가동하기 위해선 막대한 투자금이 지속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부사장이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미래 선단 로드(첨단 공정)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설비투자 내에서 연구개발(R&D) 항목 비중도 이전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번 위기를 경쟁자와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경계현 사장도 업황이 악화할 조짐을 보이던 지난해 9월부터 "연구개발에 신규 투자를 더 집행해 경쟁사와 격차를 늘려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설비투자를 기존 계획대로 이어가더라도 반도체 생산량은 소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차세대 제품인 5세대 1a~1b(10나노) 공정의 D램 양산 비중을 확대함으로써 미세공정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일시적인 라인 가동 중단과 설비 재배치가 필수적이여서 자연적으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최고의 품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단기구간 의미 있는 규모의 비트그로스(비트단위로 환산한 반도체 생산량 증가율)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는 기존 시장에서 예상하던 수준의 감산 규모가 아닌 만큼 메모리반도체 혹한기가 더욱 춥고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메모리 반도체산업이 역대 최악의 침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2023년 메모리반도체 3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합계 영업손실은 역대 최대인 50억 달러(약 6조15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