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애플이 ‘탈중국’ 행렬에 동참하며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제품 생산기지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의존해온 중국 비중을 낮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스마트폰 경쟁자인 삼성전자도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는 상황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일찍이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해 애플과 비교해 여유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 애플이 ‘탈중국’ 행렬에 동참하며 생산기지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와 달리 일찍이 베트남 등 신흥국의 성장성을 주목했던 고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과 이를 계승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생산기지 재편을 추진한 이재용 회장의 결정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 등 신흥국의 성장성을 주목했던 이건희 선대회장의 선견지명과 이를 계승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생산기지 재편을 추진한 이재용 회장의 결정이 스마트폰 출하량 세계 1위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중국에 편중돼 있던 생산시설을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본격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애플은 물론 2017년부터 인도에서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지만 대체로 구형 모델이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최신 제품인 아이폰14 조립을 시작했다.
앞으로 애플의 인도 생산 비중은 더 올라갈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은 “애플은 인도에서 전체 제품의 약 5~7%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를 25%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도 대체로 이같은 관측에 동의하고 있다.
애플은 베트남으로도 모바일 제품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애플은 2020년부터 베트남에서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올해부터 맥북과 애플워치 등의 생산라인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애플의 탈중국 행보는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향한 기술·장비 수출 등을 비롯한 각종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이 기존의 중국 편중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생산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생산기지와 공급망이 중국에 편중돼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애플은 중국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조치로 공급망 경색과 공장 가동 중단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애플의 탈중국 행보와 생산기지 다변화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를 두고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애플이 현재 중국 장저우와 선전 등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 비중은 90%를 넘는 만큼 이를 낮추는 일 자체가 물량 자체로도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생산시설을 옮긴 뒤에도 일정한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문화, 제도, 인프라 등이 중국과 상이한 지역에서 기존과 같은 생산체제를 완벽히 구축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로 여겨진다. 더구나 중국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편성된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을 재구성해야 하는 일도 큰 숙제로 남는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달리 스마트폰 생산기지가 다변화돼 있다는 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강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요인이다.
물론 삼성전자와 애플이 생산 방식과 제품 구성, 시장 입지 측면에서 작지 않은 차이가 있는 만큼 두 기업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스마트폰 생산기지를 철수한 데에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가파른 추격과 중국 내 원가 상승에 따른 가격 경쟁력 상실도 한 몫 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정확한 안목과 과단성을 지닌 ‘리더의 한 수’가 생산 리스크를 분산하는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본격적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당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고위급 경영진들에게 “베트남을 철저히 공부하라”고 지시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있던 시점에 중국에 이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베트남을 지목한 것이다. 베트남이 ‘포스트 차이나’로 본격 조명되기 이전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2005년 판 반 카이 당시 베트남 총리를 만나 “중국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점 등을 고려해 앞으로 전자 부문 등을 중심으로 베트남을 향한 투자를 적극 확대할 것을 고려하겠다”고 말하며 다방면의 경제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 무렵은 아직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도 전이었지만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신흥국들을 생산거점이자 잠재력 높은 소비시장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사업기반을 닦아 놓은 셈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베트남 하노이 북부 박닌성 옌퐁에 모바일 공장을 세워 2009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했고 생산량도 크게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2013년 베트남 북부 타이응우옌성 옌빈에 두 번째 모바일 생산기지를 구축하기로 했는데 이 때 이재용 회장이 이 사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옌빈 공장은 이듬해 3월 가동을 시작했고 이후 베트남은 삼성전자의 최대 모바일 생산기지로 자리 잡았다.
2018년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생산기지 재편과 관련해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된 해다. 그해 7월 삼성전자는 인도 노이다에 연간 스마트폰 1억2천만 대를 제조할 수 있는 공장을 완공했다.
그 해 말에는 중국 톈진 스마트폰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톈진공장은 2001년 가동을 시작해 2013년 매출 15조 원을 넘는 등 중국 모바일시장 확대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지만 삼성전자의 중국 내수시장 입지가 약해지며 생산량도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이와 함게 중국에서는 직접생산이 아닌 합작생산(JDM) 형태로 생산방식을 바꿨다.
현재 삼성전자의 생산 거점별 스마트폰 생산 비중은 베트남 60%, 인도 20%, 인도네시아 4%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런 생산기지 다변화는 삼성전자의 원가경쟁력을 높이면서 지리적으로 인접한 소비사장으로 침투에도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생산 비중을 40%대로 낮추고 인도 비중을 높여 위험요인을 분산하는 생산기지 다변화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급하게 탈중국을 추진하는 애플보다는 생산 안정성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대목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출하량 기준 시장점유율에서 쫓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2년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22%로 1위를 차지했다. 애플(19%)에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샤오미(13%), 오포(9%), 비보(9%) 등이 뒤를 이었다.
전 세계적 공급망 불안과 경기 침체로 전반적으로 출하량이 줄었지만 안정적 생산기반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자리를 지킨 것으로 분석된다.
안정적 생산 구조는 점진적 경기 회복과 맞물리면서 애플과 중국 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고 스마트폰 출하량 세계 1위를 유지하는데 힘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DX(모바일) 부문의 실적은 갤럭시S23 신제품 출시 효과까지 반영되며 올해 1분기부터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