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비혼 파이어(FIRE)족이 온다

▲ 캐나다 20대~50대 다양한 나이의 싱글들이 아마추어 라틴 댄스팀을 짜서 공연 중이다, 가운데가 필자. <캐나다홍작가>

[비즈니스포스트] 요즘 비혼 파이어족이 늘고 있다. 파이어(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조기 퇴직함)의 약자이다. 검소하게 생활하며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 마흔 전후에 은퇴해서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움직임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부담이 크고 비싼 양육비, 양육책임 전가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파이어’와 ‘비혼’이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성향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은 전 세대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에 의문을 던지고 빡빡한 삶을 벗어나 여유를 찾고 싶어 한다.

노인이 되기 전까지 직장, 월급에만 목매는 것이 옳은지, 그러고 싶어도 그게 불가능한 시대는 아닐지를 고민하며 급변하는 경제에 휘둘리지 않으려 전략을 짠다. 어떻게 자산 관리를 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려면 당장 무얼 참고 무엇에 투자할지를 고심한다. 

세상에 떠밀려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체가 되려는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다 보니 가족관계에 대한 선택도 이전 세대보다 다양해진다.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사람 만나서 출산 양육하는 삶이 나에게 진짜 맞는지, 내가 정말 원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관계는 어떤 것인지를 숙고한 끝에 비혼이나 무자녀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비혼 파이어족은 다 행복할까? 이 질문은 ‘결혼 가족은 다 행복한가?’라든지 ‘정년 은퇴 희망자들은 다 계획대로 은퇴가 될까?’를 묻는 것처럼 한 가지 답이 있을 수 없는 물음이다. 어떤 삶에서든 나름의 답을 찾고 잘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아직 길을 찾는 중인 이들도 있고, 실패하고 방향을 돌리는 이들이나 방황 중인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다양한 변주가 있으나 그래도 이런 변화가 다행인 이유는 이전 세대보다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추구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나이에 맞춰 남들 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식의 비논리적 이유가 아니라 자기 나름의 논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 와중에 어떤 삶의 모습이 더 좋은지 경쟁하듯 갈등하는 것은 우습다. 그럴 일이 아니다. 각자의 삶의 형태를 선택하는 것에 무슨 경쟁이 필요한가. 옳고 그름은 없다. 나에게 더 맞고 안 맞고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자신있게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고 듣고 참고해서 자기 선택지를 넓혀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기존 직장 생활이나 가족관계의 장단점은 주변 사람들의 삶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자주 접해왔다. 반면 비혼 파이어족의 삶의 모습은 이제 막 조명되기 시작했다. 더 활발히 조명되어서 젊은이들이 자기 인생 계획을 다듬는 데에도 활발히 써먹게 되길 희망한다. 
 
[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비혼 파이어(FIRE)족이 온다

▲ 단풍의 계절, 캐나다의 가을, 동네 공원에서 카약을 타며 즐기는 풍경. <캐나다홍작가>

필자 역시 비혼 파이어족이다.

이제 막 추구 중인 젊은 세대가 아니라 이에 꽤 오랫동안 만족하며 살고있는 마흔 중반의 경험자이다. 몇몇 인터뷰를 통해 중년 비혼의 예, 소박한 파이어족의 한 예로 소개되기도 했고 민망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에게 롤모델로 불리기도 했다. 아직 다양하고 풍부한 예들이 소개되기 전이다 보니 필자의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봐주는 분들이 많은 덕이다. 

나는 20년간 입시강사로 일하다가 미세먼지를 피하고자 마흔에 은퇴하고 캐나다 영주권을 받아 이민와 살고 있다. 비혼 파이어족이었기에 조기은퇴를 하고 환경이민을 가겠다는 결심을 실천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변화에 유연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더 적은 자본이나 노력으로도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삼십대 내내 주 100시간씩 일하기를 자처하며 소액이나마 생활비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둔 덕에 일을 관둘 용기를 낼 만했다. 건사할 다른 세대원이 있었다면 소박하게 절약하며 살 생각으로 20년 일 경력과 수입을 단번에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어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살아보겠다는 용기를 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은퇴 후 절약하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만 다양한 활동을 포기한 채 밥 먹고 숨만 쉬며 사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과 연애하는 것도 즐기고 생활과 성격이 비슷한 지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큰 돈 안들이고도 취미생활이 되는 문화센터나 인터넷 상의 콘텐츠들 덕에 댄스, 그림, 운동 등 취미 활동도 다양하게 해오고 있다.

사회 문화 기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 일년내내 여러 축제들이 넘치는 곳을 선택해 살다 보니 조금만 발품을 팔면 일상이 금방 풍부해진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잘 안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과 행동력이 즐거운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다. 필자가 소박한 파이어족, 중년 비혼자로서 즐겁고 편하고 여유넘치게 살 수 있는 이유들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결혼하고 애를 낳아 키우고 정년퇴직까지 일하며 사는 기존 삶의 방식을 더 옳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비혼, 파이어족들이 자기 삶을 얘기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는데도 거부감을 표현하는 이들이 꽤 있다.

이전에는 온통 결혼한 삶, 평범한 직장인의 얘기들 뿐이었고 이제 막 다양한 다른 삶들이 얘기되기 시작하는데 이게 불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획일적이었음을 알려준다.

남들도 나 같아야 하고, 우리가 되어야 안심인 사회, 다들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좀 다르면 곁눈질하는 게 익숙한 사회. 언제까지 일하고 은퇴할지,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 등 각자가 알아서 정할 일까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사실 성인이 된 후 개인의 삶은 결혼과 출산이 아니라 비혼과 비출산부터 시작하는 게 기본값이다. 이 기본값에 결혼이나 출산 양육 등의 다른 값을 더 얹을지 말지를 택하는 게 순서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국은 성인의 독립을 결혼과 동일시하는 세태였기에 ‘왜 결혼하지 않는가’라는 순서 뒤바뀐 질문을 던지곤 한다. ‘왜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를 묻고 답하며 숙고할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조기은퇴를 바라는 파이어족 젊은이들을 철부지 취급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정년 은퇴가 불가능한 시대이다.

파이어는 경제 위기 때마다 개인이 어떻게 직장도 잃고 위기에 내몰리는지 보아왔기에 경제적 안정, 경제적 자유를 빨리 이뤄서 회사와 월급에만 목매지 않는 독립성을 갖추려는 움직임이다. 불안한 시대에서 나름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고, 그런 만큼 경제 공부, 투자 공부도 열심히 하는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아니라 인정과 존중이 먼저인 성숙한 사회여야 한다.

비혼 파이어족이 오고 있다, 개인의 인생길, 남이 막을 일도 아니고 막아지지도 않을 시대이다. 어떤 선택이든 자신의 성향에 맞는 길을 택해 만족하며 살 수 있으면 다행이다. 나와 다른 이들이 늘어나는 것에 불안해할 필요 없다.

세상은 원래 다양하게 빛난다. 모두에게 따스한 눈빛과 응원을 건낸다. 캐나다홍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