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인도인 이민가정 출신인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이 영국 집권 보수당 대표를 뽑는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수낙 전 장관이 경선에서 승리하면 영국 역사상 최초의 소수인종·이민자 출신 총리가 탄생한다. 또한 토니 블레어·데이비드 캐머런(만43세) 전 총리의 기록을 넘어 1812년 만42세로 제22대 총리에 오른 로버트 뱅크스 젠킨슨 총리 이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 기록을 다시 쓰게 된다.
▲ 리시 수낙 전 영국 재무장관.
14일(현지시각) BBC에 따르면 사의를 밝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뒤를 이을 차기 보수당 대표를 뽑는 경선 2차 투표에서 수낙 전 장관은 101표를 획득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83표), 리즈 트러스 외무부 장관(64표), 케미 배디너크 전 평등담당 부장관(49표), 톰 투겐드하트 하원 외교위원장(32표) 순이다. 1차 경선 투표를 통과했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법무상은 27표를 얻어 탈락했다.
보수당 대표 경선은 2차 투표부터 최하위 득표자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2명이 남을 때까지 진행한다. 최종 후보 2인이 가려지면 보수당 전 당원이 우편투표를 통해 최종 1인을 선출한다.
영국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하원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이 때문에 여당인 보수당의 새 당대표가 곧 차기 총리가 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파티게이트'에 따른 불명예 퇴진 위기를 넘겼지만 인사 문제와 거짓말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7일(현지시각)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그러나 총리 자리는 당 대회에서 후임자가 선출될 때까지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낙 전 장관은 5일 존슨 총리의 사퇴를 주장하며 장관직을 내려놓았다.
수낙 전 장관은 13일 진행된 1차 투표에도 가장 많이 득표해 유력한 총리 후보로 꼽힌다. 다만 투표가 진행되면서 모돈트 부장관에게 표가 모일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지매체 가디언은 의원 투표에선 수낙 전 장관이 우세하지만 일반 당원 여론조사에선 모돈트 부장관 지지율이 높다고 전했다.
수낙 전 장관은 1980년 잉글랜드 사우스햄튼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긴 했지만 전통적 영국인인 앵글로색슨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 인도계다. 전체 인구의 87%가 백인인 영국에서 흑인(3%)과 아시아인(6%)은 소수인종으로 분류된다.
수낙 전 장관의 가족사를 보면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 펀자브 브라만(카스트 가운데 제일 높은 계급) 출신인 조부모가 동아프리카로 이주했으며 아버지는 케냐에서, 어머니는 탄자니아에서 태어났다. 이후 수낙 전 장관의 부모는 1960년대 영국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아버지는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일반의로, 어머니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로 근무했다.
수낙 전 장관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이후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직접 헤지펀드를 창업해 운영하는 등 '엘리트'의 삶을 살았다.
2015년 총선에서 의회에 입성한 뒤 2020년 존슨 총리의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차기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영국에선 장관들을 임명할 때 재무부 장관을 차기 총리로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수낙 전 장관은 강경한 대처주의자이자 시장자유주의자다. 대처주의는 영국 경제를 재생시킨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경제·사회 정책을 이르는 말로 복지 축소·규제 완화·공기업 민영화 등을 뼈대로 한다. 다만 수낙 전 장관은 보리스 존슨 총리보다는 다소 실용주의적이며 유연하고 소통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장관에 임명될 당시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직후였기 때문에 국가 재난 사태에 대비해 국가 예산을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낙 전 장관은 취임 후 곧바로 추가지출 예산안을 발표했고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개인과 기업에게 지원금을 쏟아냈다. 'Pay First, Tax Later'라는 구호에 걸맞게 일단 지금 당장 어려운 상황이니 지원부터 하고 재정난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각종 세금을 면제하거나 감면해 주고 고용유지 지원금을 대폭 늘리면서 국가적으로 직면한 재난이 국민들 개개인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보수당의 지지율이 굳건했던 데에는 이런한 조치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다.
수낙 전 장관은 인도 기업인의 딸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수낙 전 장관의 부인은 '비 거주 비자'를 활용해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