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핀란드가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74년 동안 유지해온 중립국 지위를 내려놓는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세계 최연소 총리에 올라 기존 정치권의 틀을 깨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린 총리는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중립국 포기라는 과감한 결정으로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핀란드 나토 가입 신청, 세계 최연소 총리에 지구촌 다시 눈길

▲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핀란드 정부는 15일 나토가입을 신청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과 산나 마린 총리는 이날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대통령과 정부 외교정책위원회는 의회와 상의를 거쳐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신청할 것이라는 데 공동으로 합의했다”며 “가입을 위한 행정절차는 앞으로 며칠안에 신속하게 처리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핀란드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인 총리가 서로 같은 견해를 밝힘에 따라 핀란드 집권여당인 사회민주당도 같은 취지의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핀란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형태의 이원집정부제로 통치되는 국가로 행정부의 권한을 대통령과 내각의 수반인 총리가 나누어 갖는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내정을 책임지는 총리 권한이 매우 크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1300킬로미터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유럽 국가로 1948년 이후 오랫동안 군사적 중립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마린 총리는 4월2일 소속 정당인 사회민주당 지도부를 상대로 한 연설에서 안보정책의 대전환을 역설했다. 이날 연설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줄곧 중립노선을 걸어온 핀란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파격적 내용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린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정세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그동안 핀란드가 견지해온 중립노선이 과연 옳은지 재평가할 때가 되었다며 말문을 열였다.

마린 총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닌 핀란드 자신의 문제라고 단언하고 안보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 회원이 되느냐 마느냐에 관한 토론도 마찬가지”라며 “이 토론은 핀란드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린 총리는 나토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토론이 짧은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한다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촉구했다.

마린 총리는 “여름이 되기 전에는 나토 가입 신청 여부가 확정돼야한다”며 “결정은 최대한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몇 달이 아니고 몇 주 안”이라고 못을 박았다. 4월 아니면 5월 안으로 결단을 내리고 나토 가입을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초래할 긍정적 및 부정적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4월 안에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굳이 ‘부정적 영향’을 거론한 것은 3월 핀란드가 스웨덴과 함께 나토 가입을 타진하고 나서자 러시아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러시아와 전쟁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의원들이 결정에 있어 신중을 기해달라는 주문을 한 셈이다.

핀란드와 스웨덴 두 나라는 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30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가입을 승인받아도 기존 30개 회원국 의회가 이를 비준하기 전까지 1년 안에 정식 회원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즉 30개 회원국 의회가 모두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을 완료하기 전까지는 러시아가 양국을 침공하더라도 나토 집단안보의 핵심인 헌장 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칫 우크라이나처럼 나토 가입 전 러시아의 군사행동 촉발할 수도 있는 셈이다.

러시아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다면 보복 조취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러시아 외무부는 12일 성명을 통해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북유럽 지역의 안정과 안보 유지에 심각한 손해가 있을 것”이라며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보복 조치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또 “군사적·기술적 방법과 그 밖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발트해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등 러시아의 방어수단을 강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핀란드 정부가 중립국 포기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기존 정치권 문법과 다른 마린 총리의 방식과 성향이 배경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린 총리는 기존의 틀과 다른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핀란드 의회 원내 1당인 사회민주당 대표까지 오르며 정치권에서 무서운 속도로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 엄마만 둘 있는 성소수자 가정에서 자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15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 진학 전 가게 점원으로도 일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20살에 핀란드 사회민주당에 입당했고 2008년 탐페레 시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7살인 2012년 재도전 끝에 당선돼 시의회 의장을 지냈다.

2015년 핀란드 의회에 입성한 후 2017년 사민당 부의장이 됐고 2019년 교통통신부 장관이 된 지 6개월 만에 총리가 됐다. 34세로 핀란드 총리에 취임해 세계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여성으로 한정하면 역대 전 세계 정부 수반 가운데 최연소였다.

그가 총리로 선출된 뒤 마르트 헬메 에스토니아 내무장관이 마린 총리를 ‘여점원’이라고 조롱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마린 총리는 “난 핀란드가 매우 자랑스럽다”며 “여기선 가난한 가정의 아이가 공부해서 인생의 목적을 이루고 현금 수납원도 총리가 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총리에 취임한 뒤인 2020년에는 15년 동안 동거한 배우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 해 패션 화보에서 상의 속옷을 입지 않고 가슴이 깊게 파인 재킷만 입은 모습으로 등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총리로서 부적절한 차림”이라는 비판과 함께 “가부장적 사회문화를 타파하는 용기 있는 여성의 행동”이라며 이를 지지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핀란드는 그동안 국경 맞댄 구소련과 2차례 전쟁 치른 과거 때문에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왔다.

모스크바와 182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핀란드가 나토에 들어가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과 맞댄 국경선은 현재 1215킬로미터에서 2500킬로미터 이상으로 2배 가까이로 늘어난다.

나토의 동진을 막겠다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로선 제대로 역풍을 맞은 셈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핀란드 보복시 미국이 지원을 보증하라는 스웨덴의 요청에 대해 직접적 답변은 피했다. 다만 나토는 가입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핀란드를 보호하기 위해 발트해 주변에 병력을 증강하겠다고 밝혔다.

제프 아들러 나토 주재 미국 대표부 대변인은 “우리는 이들 국가가 나토 가입 신청으로부터 실제 가맹 사이 기간에 가질 수 있는 우려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보다 적극적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11일 핀란드와 스웨덴을 방문해 각각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핀란드가 침공당하면 영국군이 직접 나설 수 있게 됐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여부도 아직은 장담하기 이르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30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가입에 동의해야 하는데 터키가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이 터키가 테러그룹으로 간주하고 있는 쿠르드노동자당(PKK)에 우호적인 점을 들어 "스웨덴, 핀란드와 관련해 긍정적 관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