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선거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숙고에 들어갔다.
경선이 끝난 지 이틀째가 지났지만 결과에 승복한다는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다.
▲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압도적 차이로 이기자 결선투표를 통한 뒤집기에 미련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의 장고 이유로 향후 정치적 선택지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12일 민주당 내에서는 경선 결과를 두고 이 전 대표 측의 결선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전 대표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설훈 의원은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지금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에서 공정하지 않고 일방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
설 의원은 진행자가 가처분소송, 위헌법률심판제청 등 법적 대응이 가능하냐고 묻자 "얼마든지 그런 방법들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설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놓고 대장동사건과 관련해 구속수사 가능성이 높다며 '불안한 후보'라는 딱지는 붙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 전 대표측은 이날 예정된 해단식도 취소하며 경선결과에 당장은 승복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전 대표가 직접 언급은 않고 있지만 캠프측 인사의 이런 움직임이 이 전 대표의 의중과 무관하다고 보는 이들은 적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표가 경선 승복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는 것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우선 이 전 대표가 결선투표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희망에 기름을 부은 것은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압승이다.
이 전 대표는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62.37%로
이재명 후보를 크게 앞섰다. 대장동사건을 이슈화하며
이재명에 '불안한 후보'라는 딱지를 붙이는 전략이 유권자에 먹혔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전 대표의 희망과 달리 민주당 지도부 분위기는 이 전 대표측의 이의제기에 냉담하다.
송영길 대표는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전 대표 측의 경선결과 이의제기를 놓고 "이미 당 선관위에서는 결정했기 때문에 다시 거론할 법률적 절차는 없다"며 "13일 최고위에서 정무적으로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경선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없냐고 사회자가 묻자 송 대표는 "그렇다. 사실상
이재명 후보가 11%포인트 이상 이긴 게 아니냐"며 "정치적으로도 승복해야 할 상황이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당 지도부가 13일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선결과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 이 전 대표로서는 선택지가 더욱 좁아진다.
그렇다고 탈당과 독자세력화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어렵다.
이 전 대표는 명분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정치인이다. 경선 기간 원팀을 누구보다 강조해 온 만큼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그동안의 사례를 살펴봐도 독자세력을 키워 대선에 출마하는 건 좋은 선택지는 아닐 수 있다.
지금의 이 전 대표처럼 당내 경선이 끝난 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이의제기를 했던 경우가 종종 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에 불복해 독자출마한 이들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3명의 후보가 중도사퇴하며 대선 후보경선은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싸움으로 좁혀졌다. 이인제 후보는 지지율이 떨어지자 탈당 후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이인제 후보는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도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한 뒤 대선 직전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그 뒤 정치인으로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2년에도 민주당 경선에서 손학규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중도 사퇴표를 무효표로 처리하는 게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한 편파적 조항이라며 이의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가 경선 승복 선언을 미루고 있는 것은 향후 정치행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전 대표는 당대표와 국무총리까지 지내 다음 행보는 자연스럽게 대통령이 된 셈인데 다음번 대선을 노리기에는 올해 만 68세인 나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다음 대선 때까지 정치권에서 할 역할도 마땅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전 대표에게 남은 선택지가 승복 선언외에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전 대표가 그동안 보여줬던 신중한 태도를 고려하면 13일 있을 당 최고위의 결정을 보고 주변의 의견을 수렴한 뒤 대승적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려도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이미지에는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