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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왼쪽)와 팀 쿡 애플 CEO. |
2016년을 여는 국내 기업인들의 신년사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기업인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올해도 ‘혁신’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신년사에 이어 최근 열린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도 최고경영진들에게 변화와 혁신을 거듭 주문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혁신이란 단어를 빼놓지 않았다.
권선주 기업은행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 금융권 CEO들도 마찬가지로 혁신을 내세웠다.
혁신은 영어로 innovation, 한자로 革新이라고 쓴다. 한자어에 ‘가죽 혁(革)’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 후한 시대에 허신이라는 학자가 한자의 바른 사용을 알리기 위해 집필한 ‘설문해자’라는 책에서 ‘혁’ 자는 이렇게 정의된다.
獸皮治去其毛曰革. 革, 更也.(수피치거기모왈혁.혁, 갱야) 풀이하자면 짐승의 가죽에서 털을 뽑아 다듬은 것을 '혁'이라 하며 ‘혁’은 (새롭게) 고치는 것이다.
짐승의 털과 가죽은 뽑혀 가방이나 옷이 되기도 하고 신발이 되기도 한다. 털이 뽑히고 가죽이 벗겨지는 짐승의 고통이 수반될 때 비로소 근본적인 탈바꿈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신간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알마)은 제목이 이미 말하고 있듯 스티브 잡스를 중심으로 애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룬 책이다.
잡스는 살아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저자 유카리 이와타니 케인도 애플이 위대한 기업인 이유를 혁신에서 찾는다. 단지 매출 숫자 같은 것으로 위대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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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카리 이와타니 케인 지음, 이민아 옮김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 |
저자는 월스트리트에서 15년 넘게 IT산업 부문 저널리스트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잡스 시대의 전후 애플을 통찰력 있게 파헤치고 있다. 기존에 무수히 출간된 스티브 잡스 전기나 평전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혁신을 주도했던 잡스가 부재한 애플, 잡스에게 가장 신뢰를 받았고 잡스의 경영철학을 가장 잘 이해했던 팀 쿡이 잡스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숱한 일화를 통해 그려보이고 있다.
저자는 혁신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애플의 존재이유와 미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팀 쿡이 경영을 잘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팀 쿡은 성격이나 학창시절, 업무스타일, 경력 등 어느 면에서 보아도 완벽한 최고경영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팀 쿡의 애플에 대해 비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잡스가 상징하는 혁신이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바라본다.
가령 팀 쿡이 TV나 애플워치를 내놓거나 테슬라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데 대해 저자는 혁신을 구매의 대상이나 상투적인 구호로 대신하려는 것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애플이 샤오미나 화웨이 등 중국기업들의 거센 도전에서 진정으로 위태로운 것은 잡스 시대가 낳은 ‘혁신의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
무수한 경영사례를 통해 이 책에서 제시된 잡스 이후 애플의 위기는 국내 기업인들이 혁신을 구호의 차원에서 남발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이켜보는 데 지침서가 될 만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