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조건을 다시 협상하자고 요구한 것은 '양수겸장'의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재협상으로 기존 계약보다 유리한 인수조건을 끌어낼 수도 있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포기를 위한 명분을 쌓는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오늘Who] 정몽규, 아시아나항공 양수겸장 두고 채권단 답 기다려

정몽규 HDC그룹 회장.


HDC현대산업개발은 9일 보도자료를 내고 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조건을 다시 협상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현재 상황이라면 기존 계약보다 유리한 인수조건으로 다시 계약을 맺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항공업황이 전례 없이 나쁘다는 점을 살펴봤을 때 정 회장이 인수에서 손을 떼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을 상당히 오랫동안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정 회장이 애경산업 등과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지난해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불발되면 채권단이 안아야 하는 부담도 큰 만큼 다시 오르는 협상테이블에서는 정 회장의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정 회장이 재협상에서는 커진 협상력을 활용해 인수조건에서 핵심적 요소로 여겨지는 아시아나항공 구주 가격 인하나 영구채 출자전환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업계가 바라보는 이유다. 

정 회장이 재협상에서 만족할 만한 인수조건을 얻지 못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방안도 열려 있다. 

심각하게 악화한 아시아나항공 재무상태를 감안하면 정 회장이 주식매매계약에 따른 2500억 원의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서 손을 떼는 것이 낫다는 시각이 많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나항공 추가 부실 가능성을 놓고 “대부분 문제가 실사 과정에서 나와 앞으로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새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주식 매매계약이 이뤄진 뒤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사태에 예상하지 못한 부채까지 잇달아 발생하며 정 회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최악의 재무상태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4분기에만 부채가 4조5천억 원이 늘었고 1분기 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6297.8%에 이르렀다. 부채비율이 1분기 말 기준으로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가장 높다. 

1분기 말 자본총계도 2102억 원까지 줄어들어 1분기 연결기준 자본잠식률이 81.2%로 나타났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건설업계에서 가장 재무 건전성이 우수한 회사로 꼽히지만 아시아나항공을 떠안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HDC현대산업개발 주가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불발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급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와 관련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인수조건을 추가로 얻지 못해 아시아나항공에서 발을 빼더라도 재협상을 통해 인수 의지를 보인 만큼 인수 포기에 관한 명분은 충분히 쌓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정 회장이 HDC그룹을 모빌리티그룹으로 전환하는 데 강한 의지를 지닌 만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어떻게든 성사시킬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항공업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현재의 위기만 넘기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어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명확한 개념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HDC그룹이 항만사업을 하는 만큼 육상, 해상, 항공 등을 확장하며 모빌리티그룹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좀 더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의미는 크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감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