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모펀드는 그동안 기업 인수전에서 외국계 사모펀드와 대기업이라는 큰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특히 외국계 사모펀드는 막대한 자금력과 오랜 노하우를 앞세워 국내 인수합병시장에서 강한 힘을 발휘해 왔다.
그런데 최근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 성공으로 국내 사모펀드가 외국계 사모펀드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또 국내 사모펀드가 성장하면서 대기업과 사모펀드가 손잡고 인수합병에 나서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 대형 매물은 여전히 외국계 사모펀드 차지
MBK파트너스는 해외 사모펀드인 칼라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골드만삭스PIA,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등을 제치고 홈플러스를 인수해 ‘토종 사모펀드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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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배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아시아 대표. |
이는 거꾸로 국내 사모펀드가 외국계 사모펀드와 맞붙었을 때 얼마나 이기기 힘든지 보여준다.
외국계 사모펀드는 올해 상반기 이뤄진 매각가격 기준 10위 안에 드는 대형기업 인수 계약 가운데 2건을 차지했다.
일본계 오릭스가 운용하는 사모펀드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는 현대증권을 1조800억 원에 인수했다.
미국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창업자인 신현성 대표이사와 손잡고 5천억 원에 티켓몬스터를 사들였다.
국내 사모펀드 가운데 IMM프라이빗에쿼티만 태림포장을 3500억 원에 인수해 순위 안에 들었다. 다른 국내 사모펀드들은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형기업 인수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칼라일은 2014년 벌어진 국내 2위 보안회사 ADT캡스의 인수전에서 MBK파트너스를 물리쳤다. 칼라일은 당시 2조650억 원에 ADT캡스를 사들였다.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계 사모펀드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외국 펀드는 340개 이상이다. 2011년 말 135개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이 펀드의 대부분이 사모펀드라고 보고 있다.
◆ 한국 인수합병시장 주목하는 외국계 사모펀드
외국계 사모펀드는 노하우와 자금력에서 국내 사모펀드를 압도한다. 칼라일은 지난 6월 기준으로 전체 운용자산이 228조 원에 이른다. KKR도 전체 운용자산이 120조 원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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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정 CVC캐피털파트너스 한국 회장. |
외국계 사모펀드는 한국 인수합병시장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존 그린우드 인베스코자산운용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한국은 아시아 신흥국가 중에서도 관리가 잘되고 있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좋은 투자처”라고 평가했다.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2013년 말부터 수십억 달러의 펀드를 조성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시장 투자를 늘리고 있다.
KKR은 당시 아시아지역 전담인 ‘아시아2펀드’를 만들어 한국에서 OB맥주를 인수하고 재매각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어피니티는 40억 달러의 운용자산 가운데 20~30%를 한국에 투자하고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한국인력을 확충해 영업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임석정 전 한국JP모건 대표는 최근 외국계 사모펀드인 CVC캐피털파트너스의 한국 회장으로 선임됐다.
세계 4대 사모펀드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은 2014년 7월 한국사무소를 열고 이승준 전 골드만삭스 상무를 대표로 영입했다. 홍콩계 사모펀드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과 미국계인 베인캐피털도 한국 담당자를 임명하고 시장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계 사모펀드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인수합병시장에서 쌓았던 ‘먹튀’ 이미지를 씻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는 당시 헐값에 나온 국내 기업을 대거 사들였다. 그 뒤 인수한 기업을 매각해 대규모 차익을 실현하면서 국부유출 논란를 일으켰다.
외환은행 인수와 재매각 과정에서 제기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먹튀 논란이 대표적이다.
◆ 대기업, 인수합병의 경쟁자이자 협력자
대기업은 국내 인수합병시장에서 공급자이자 수요자다. 대기업은 최근 경기불황으로 투자를 줄이고 있지만 대형 매물이 나오면 인수후보로 여전히 가장 먼저 꼽힌다.
대기업은 올해 상반기 매각가격 기준으로 주식양수도계약 10위 안에 있는 KT렌탈(롯데그룹)과 팬오션(하림그룹) 등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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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대기업은 오너십을 바탕으로 인수합병 과정에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점이 강점이다. 롯데그룹은 올해 초 KT렌탈 인수전에서 이런 강점을 제대로 보여줬다.
롯데그룹은 KT렌탈 예비입찰과 1차 본입찰에서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수경쟁이 격화하자 2차 본입찰에서 최고가인 1조200억 원을 제시해 다른 후보들을 제쳤다.
국내 인수합병시장이 점차 대형화하면서 사모펀드와 대기업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국내기업 인수합병(부동산 포함)시장의 거래대금 규모는 797억 달러였다. 2013년 418억 달러에서 20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기업 인수합병 거래는 2013년 482건에서 2014년 468건으로 줄었다. 그만큼 인수합병 규모가 커진 셈이다.
대기업과 사모펀드가 서로 손잡고 전략적투자자(SI)와 재무적투자자(FI)로 역할분담을 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이 장기적 성과를 마련하는 동안 사모펀드는 안정적 배당수익을 얻으면서 나중에 지분을 팔아 투자차익까지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는 2014년 한앤컴퍼니와 손잡고 한라비스테온공조를 인수했다. 한국타이어는 2015년 초 KT렌탈 인수전에서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와 공동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NH농협은행은 2014년 7월 사모펀드 글랜우드와 손잡고 동양매직 지분 100%를 인수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대기업이 자율적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사모펀드의 인수합병을 활성화할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