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삼현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 사장이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옮기면서 현대중공업그룹 경영진들의 역할이 더욱 분명해졌다.
24일 조선업계에서는 가 사장의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선임을 놓고 시급한 현안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가삼현, 유럽에서 기업결합 대응이 중요
한국조선해양은 앞으로 가 사장과
권오갑 회장 각자대표체제로 경영된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아직 가 사장과 권 회장이 어떤 영역을 담당하게 될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 사장이 그동안 기업결합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이끌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 사장의 최우선 과제는 기업결합 지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위한 심사는 한국, 유럽,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5개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다.
각 나라 경쟁당국이 모두 1차 심사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심층심사에 들어간 가운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심사결과가 가장 빠른 7월에 나올 것으로 예정돼 있다.
유럽은 글로벌 주요 선주사들이 모여 있으며 독점규제법도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유럽의 심사결과는 다른 나라 경쟁당국의 심사결과에서도 판단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조선업계는 바라본다.
이 때문에 가 사장도 유럽에서 심사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에 앞서 이탈리아 조선사 핀칸티에리(Fincantieri)와 프랑스 조선사 샹티에들라틀란티크(Chantier de’l Atlantique)의 기업결합심사를 시작했다.
이 기업결합심사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과 구도가 유사해 좋은 비교대상이다.
핀칸티에리와 샹티에들라틀란티크는 글로벌 크루즈선 수주잔고 점유율 1위와 2위 조선사로 두 회사의 합산 크루즈선 건조 점유율은 56%다. 독일 메이어베르프트(Meyer Werft)가 크루즈선 건조시장의 확실한 3위 조선사로 두 조선사를 뒤따른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도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점유율 1위와 2위 조선사로 합산 점유율이 58%에 이른다. 두 조선사를 3위 삼성중공업이 뒤따르는 것까지 비슷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핀칸티에리와 샹티에들라틀란티크의 합병으로 크루즈선을 발주하려는 선주사들의 선택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히고 두 조선사의 기업결합 심층심사에 들어갔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도 같은 절자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 한영석, 현대중공업 노사 대립관계 책임져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은 앞으로 단독대표로 임금 및 단체협약의 책임을 짊어지게 됐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아직 2019년 임금협상을 놓고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12만3526원(호봉승급분 별도) 인상, 성과급 최소 250% 등을 요구하며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 반대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 등 현안문제의 해결도 요구안에 넣었다.
회사는 임금 4만5천 원 인상(호봉승급분 2만3천 원 포함), 타결 격려금 100%+150만 원을 제시하고 있다.
최대 쟁점은 현안문제다. 한 사장은 교섭 때마다 현안문제가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노조는 현안문제부터 우선 해결돼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12일 한 사장은 성과급을 약정임금의 193%로 책정하고 교섭 타결에 앞서 지급하는 안을 노조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오히려 노조는 20일 부분파업을 진행하며 현안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해를 넘겨서도 교섭 타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현대중공업 내부에서는 지난해 임금협상 교섭이 올해 임단협 교섭과 함께 진행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임단협을 해를 넘겨 타결했다. 특히 2016년 임단협은 2017년 임금협상과 함께 2018년 타결했을 정도로 진통을 겪었다.
◆ 정기선, 선박 발주시장에서 수주능력 보여야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는 수주영업에서 역할을 확대하게 됐다.
▲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 |
지금까지는 가 사장이 그룹 조선계열사들의 수주영업을 지휘해왔는데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이제 정 대표가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정 대표체제에서 선박해양영업본부가 안정을 찾았다고 판단돼 가 사장이 두 회사의 등기임원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수주시장은 부진하다. 코로나19에 저유가가 겹쳐 발주심리가 식어 있다.
24일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3사는 올해 들어 9억 달러치 선박을 수주했을 뿐이다. 1분기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수주목표 달성률이 5.7%에 그친다.
이에 앞서 21일 노르웨이 에너지회사 에퀴노르가 캐나다 해양유전 개발계획인 베이두노르드(Bay Du Nord) 프로젝트의 최종 투자결정(FID)을 2021년으로 미뤘다. 올해 발주될 것으로 여겨졌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의 발주도 없던 일이 됐다.
저유가가 장기화한다면 앞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계획들이 연쇄적으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 대표에게 기회도 있다.
정 대표는 3월 초 현대중공업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장기 공급계약(LTA) 양해각서 체결을 진두지휘하며 해양플랜트 수주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반기 카타르, 모잠비크,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가스전 개발사업에 필요한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을 대거 발주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