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창립 50주년을 이전과 다르게 조용히 보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0년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단련하면서 성장해왔다. 이번 창립기념일에는 비전 선포식이 없다고 해도
이재용시대의 새 비전을 주시하는 시선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1월1일 창립 50주년을 맞지만 50년 사사를 발간하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행사를 치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립 반세기라는 의미가 있지만 행사는 매년 열리는 수준의 기념식과 임직원을 향한 최고경영자(CEO)의 메시지 발표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1969년 삼성전자공업으로 출발해 1988년 11월1일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한 뒤 창립기념일을 이날로 바꿨다. 반세기 역사 만에 2018년 244조 원의 매출과 59조 원의 영업이익을 낸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는데 50돌 행사로는 너무 단촐하다.
더욱이 삼성전자는 10년 마다 굵직한 비전을 선포하면서 성장의 이정표로 삼아왔는데 비전 선포가 없는 50주년 창립기념일이 다소 허전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1999년 30주년 창립기념일에서 ‘뉴밀레니엄’ 비전 선포를 통해 2005년 매출 70조 원, 세계 3위권 진입의 목표를 세웠다.
2009년 40주년 창립기념일에는 2020년 매출 4천억 달러 달성과 글로벌 10대 기업 도약을 목표로 하는 ‘비전2020’을 제시했다.
삼성전자가 중장기비전을 제시한 1999년은 외환위기,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외환경이 최악의 상황에 처한 때였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뒤 삼성전자도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올해 4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 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1위에 오른다는 ‘반도체 비전2030’을 발표했다.
그러나 반도체 비전2030은 시스템반도체에 국한된 것으로 반도체를 넘어 정보기술(IT)사업 전반에 걸쳐 있는 삼성전자의 중장기 비전으로 보기 어렵다. 과거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와 혁신적 경영이념까지 아울렀던 중장기 비전과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난다.
삼성전자가 창립 50주년을 맞았음에도 새로운 비전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은 회사 내부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진행되고 있어 경영 리더십에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가 과거에 오너 리스크를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9년에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권 불법승계 등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은 상황에서 비전2020이 나왔다.
다만 당시 이 회장은 형이 확정된데다 비전2020 발표 이후에 특별사면도 받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라 거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다소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의 비전2020이 내년에 마무리되는 데다 이전의 중장기 비전들은 모두
이건희 회장 시절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체제의 삼성전자 역시 어느 시점에는 새로운 비전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뒤를 이어 5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기에 새로운 비전을 내걸 때가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파기환송심이 마무리되고 경영상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 이 부회장의 비전 제시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조차 이 부회장에게 새로운 비전을 묻기도 했다.
25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총수로서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을 들어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