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이 파생상품 관련 전산자료 삭제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금융감독원의 압박을 거세게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 행장은 하반기 금융권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파생상품 손실과 관련해 금융당국의 조사를 앞두고 있는데 하나금융그룹과 금감원의 불편한 관계가 재조명되면서 더욱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 행장이 하나은행의 파생상품 관련 전산자료 삭제 의혹을 놓고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말이 나온다.
하나은행은 2018년에 이어 이번에도 금감원의 조사를 앞두고 전산자료를 지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동성 금감원 부원장보는 최근 국감에서 하나은행이 ‘고의로’ 파생결합상품 관련 자료를 삭제했고 ‘은닉’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 데다 국감이 지닌 무게를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으로 단정적 발언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하나은행의 채용비리사건 당시 자료삭제 논란이 불거졌을 때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채용과 관련한 개인정보는 바로 삭제하고 보관하지 않았어도 됐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를 삼기 어렵다”고 유보적 태도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지 행장은 파생결합증권의 불완전판매 논란에 더해 자료삭제 논란까지 불거져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제가 되고 있는 자료는 지 행장이 직접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처럼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 행장이 직접 보고받는 자료를 행장의 지시 없이 실무진이 직접 삭제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지 행장이 책임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선이 늘고 있다.
그동안 지 행장은 하나은행의 파생결합상품 사태와 관련해 한 발 비껴나 있었다. 국감장에 서는 것을 모면했고 하나은행 측이 내놓은 공식 보도자료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어떠한 발언도 내놓지 않았다.
올해 3월 말에 행장에 올라 사실상 실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행장에 오르기 전까지는 글로벌사업을 총괄해왔기 때문에 지 행장에 파생결합증권 손실을 놓고 직접적 책임을 묻기가 애매하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감원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자료삭제 의혹의 책임자로 지 행장이 떠오르면서 조사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안심할 수 없게 됐다.
하나은행과 금융당국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지 행장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요인이다.
앞으로 파생결합상품 사태와 관련한 손해배상 절차를 놓고 금감원과 소통을 이어가야 하는데 지 행장이 자료삭제 의혹으로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된 셈이다.
금감원은 이미 여러 차례 하나금융그룹과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체면을 구겼던 만큼 이번 사태를 놓고 상당히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해
최흥식 전 금감원장의 압박에도 ‘연임’을 추진했고 이런 갈등은 결국 최 전 원장의 사퇴로 일단락됐다.
지 행장은 이번 종합 국정감사에서 출석을 요구받았지만 해외출장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