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사가 배터리 관련 소송에 집중하는 동안 해외업체들이 한국 배터리업계 인력들을 빼내가는 데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16일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제조사에 이어 유럽 완성차업체도 배터리 자체생산에 뛰어들면서 한국 배터리 기술인력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스웨덴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인 노스볼트는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 근무하던 직원들을 다수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스볼트는 홈페이지에서 “약 30명 이상의 일본과 한국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다”며 “일본인과 한국인 멤버들은 기술 로드맵을 세우고 팀의 다른 이들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스볼트는 미국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를 모델로 스웨덴에 2021년까지 연간 8GWh 규모의 리튬이온배터리 공장을 짓고 이를 연간 32GWh 규모까지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독일 완성차업체인 폴크스바겐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독일에 전기차 배터리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중국업체들도 경쟁적으로 배터리 관련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인 CATL과 BYD 등은 한국 배터리업체에서 일한 경력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거나 헤드헌터를 통해 한국의 배터리 관련 인력을 영입하고 있다.
최근 중국 헝다신에너지차는 전기차 배터리를 포함한 친환경에너지 자동차 분야에서 8천여 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채용 대상자 가운데 기술인력이 상당수 포함될 수밖에 없는 만큼 한국 인력의 영입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해외업체들이 한국의 배터리 전문인력을 영입하려는 것은 한국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중국정부의 보조금정책의 혜택을 받아 중국 내수시장에서 규모를 키웠을 뿐 기술력 면에서는 아직 한국에 뒤쳐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NCM 622 이상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술력을 갖춘 반면 중국업체들은 에너지밀도가 떨어지는 LFP 배터리를 주로 생산해왔다.
NCM 배터리는 양극재의 주요 성분이 니켈, 코발트, 망간으로 이뤄진 배터리로 리튬, 인산, 철로 이뤄진 LFP 배터리보다 에너지밀도가 높아 효율이 좋다. SK이노베이션은 3세대 전기차용으로 NCM811양산을 시작했으며 니켈 함량을 90%까지 높인 NCM9½½을 연구개발 중이다.
LG화학는 3세대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로 NCM712를 개발한데 이어 NCMA를 개발 중이다. NCMA는 니켈, 코발트, 망간에 알루미늄을 더해서 니켈 함량을 높여 에너지밀도를 올리고 알루미늄을 더해 안정성을 높인 미래형 배터리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G화학 등 국내업체들의 배터리 연구개발 역사가 긴만큼 한국 인력들이 해외 후발업체로 이동하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인력들이 더 많은 봉급과 조건을 제시하는 중국업체에 대거 이직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배터리 핵심기술의 유출과 함께 한국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분쟁도 인력유출에서 비롯됐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에서 인력들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영업비밀을 가로챘다고 SK이노베이션에 소송을 걸면서 두 회사의 다툼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으며 이들이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경력직 채용이었으며 영업비밀 침해는 없었다고 맞섰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공방이 격화하면서 LG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옮긴 이들이 해외기업으로 다시 이직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인력유출을 막을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이직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급여문제만 하더라도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이 해외업체가 내거는 파격적 수준의 조건을 맞춰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룹내 다른 계열사의 급여 수준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배터리 관련 인력의 유출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직은 개인의 선택이라 규제의 영역이 아니다”며 “다만 전기차 배터리 기술은 국가핵심기술인만큼 기술유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