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이사 사장이 3일 서울 삼성동 하나벤처스 본사에서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현모 기자> |
“초기 스타트업 위주로 후속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벤처캐피탈(VC)이 되겠다.”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이사 사장은 성장성이 높은 스타트업이 투자금 걱정없이 꾸준히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나벤처스는 지난해 12월 하나금융그룹이 처음으로 설립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이다. 은행이나 증권사 등 전통 금융회사들보다 좀더 전문적으로 벤처투자에 발을 들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나벤처스는 2019년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1천억 원 규모의 펀드를 구성할 계획을 세웠다. 벤처캐피탈이 출범하자마자 1천억 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3일 서울 삼성동 하나벤처스 본사에서 김동환 사장을 만나 하나벤처스의 경영목표와 투자방향을 들었다.
김 사장은 “올해만 2천억 원에 이르는 펀드를 구성할 것”이라며 “첫 펀드치고 큰 규모로 구성한 이유는 투자받은 회사들이 동일한 펀드에서 후속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하나벤처스와 뜻이 잘 맞는다고 판단되면 스타트업의 중요 투자자 역할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투자금을 구하러 다니는 일”이라며 “투자를 받기 위해 경영에 신경을 쓰지 못하기도 하는데 지속적으로 한 곳에서 투자를 받게 되면 이런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환 사장은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 재학 시절 소프트웨어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 스타트업 대표의 심정을 잘 알 수 있다고 돌아본다.
그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다보면 각 단계마다 필요한 인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사내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이럴 때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벤처캐피탈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언을 많이 하려고 한다”며 “회사가 커서 조직력이 갖춰졌을 때는 지켜보다가 회사 매각, 사업부 정리 등 중요한 기로에 있을 때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약 3조4천억 원에 이르며 사상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벤처투자가 활성화된 만큼 벤처투자업계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하나벤처스가 KB인베스트먼트나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업력이 굵직한 회사들과 맞붙어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을 가능성도 높다.
김 사장은 하나벤처스가 대형 벤처투자회사와 집중하는 투자 분야가 다른 만큼 충분히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대형 벤처투자회사들이 단기 수익률에 집중한다거나 투자회수(Exit) 직전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집중할 것”이라며 “벤처투자회사의 외형이 커지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어렵지만 하나벤처스는 다르다”고 말했다.
모기업인 하나금융그룹의 네트워크와 인프라도 충분히 활용할 계획을 세워뒀다.
김 사장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투자 대상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하나금융그룹이 보유한 네트워크가 보탬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김 사장은 “하나금융그룹은 다른 금융그룹들이 해외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해외사업을 벌이는 것과 달리 현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좋은 투자회사를 찾을 때 하나금융그룹의 해외 지점 및 현지 고객들이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네이버의 결제 플랫폼 자회사인 라인과 손잡고 인도네시아에서 디지털금융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때 현지 공공기관과 맺어둔 네트워크 역시 하나벤처스가 해외에서 투자를 벌일 때 보탬이 될 가능성이 높다.
▲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이사 사장. <비즈니스포스트 성현모 기자> |
김 사장은 하나금융그룹이 ‘제대로 된 벤처투자’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봤다.
하나금융그룹이 하나금융투자, 하나은행 등에서 직접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문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카카오나 네이버도 새 사업을 시작할 때 가능하면 독립된 회사로 분사해 그 분야에 최대한 집중하도록 한다”며 “하나금융그룹이 벤처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독립 계열사를 설립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나벤처스는 김 사장을 비롯해 모든 구성원이 하나금융그룹 외의 인물로 구성됐다. 김 사장은 벤처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와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를 거친 전문 투자심사역이고 나머지 구성원도 모두 김 사장이 직접 영입했다.
김 사장은 “하나금융그룹은 다섯 개 회사가 한 데 합쳐진 금융그룹으로 상대적으로 순혈주의가 약하다”며 “외부 인사 영입에 상당히 열려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자금담당을 맡았던 인연으로 금융업에 들어서게 됐다. 글로벌 투자회사 골드만삭스에서 고유계정 운영을, 국내 증권사에서 인수합병 및 기업공개(IPO) 등을 맡으며 ‘전통 IB(투자금융)맨'으로 오랜 기간 업무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단순히 시장 변화에 따른 주가를 예측해 투자하는 것보다 경영진이나 사업모델을 토대로 개별 회사의 성장성에 베팅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벤처투자로 돌아왔다고 한다.
벤처와 인연이 깊은 김 사장이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김 사장은 한국이 벤처투자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조언한다. 미국이나 중국 시장과 비교해 한국시장의 규모가 작다는 한계와 관련해서는 글로벌시장 진출로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한국만큼 인구가 밀집돼 있고 소비수준이 높은 나라는 드물다”며 “시장규모도 유럽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비슷한 편이며 오히려 한국은 사업성을 실험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업성을 어느 정도 검증하고 나면 적절한 투자 파트너를 찾아 글로벌 확장에 나서는 점도 좋은 방법이라고 봤다.
글로벌사업에 정통한 인력을 영입하거나, 투자받을 회사를 물색하는 것이 사업을 확장하는 시기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한국은 지난해 말 기준 수출액이 6천억 달러가 넘어 전 세계에서 7번째에 이르는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가”라며 “앞으로 한국에서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바이오나 콘텐츠 등 분야가 성장성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