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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한덕수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엘리트 정통 경제관료
김민수 기자 postms@businesspost.co.kr 2015-01-12 09: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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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한덕수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한덕수는 1949년 6월 18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197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경제학과)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17979년 경제학 석사학위, 1984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 3학년으로 재학중이던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관세청 가격조사관 사무관으로 경제관료의 첫 발을 내딛었다. 군 제대 뒤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 예산총괄과 사무관으로 일했다. 1979년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 경협총괄과 사무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공부에서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요직을 두루 거쳤고, 2007년 4월 한명숙 전 총리의 후임으로 제38대 대한민국 국무총리에 취임한다.

총리 재직중이던 2007년 6월 FTA국내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주미한국대사로 일했다.

주미한국대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Prime Minister of the Republic of Korea
Han Duck-soo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한덕수는 부하직원들에게 미시적이고 실증적 업무 접근을 요구한다. 명확하지 않게 작성된 보고서를 들고 오면 무조건 돌려보낸다. 그는 거시경제에도 밝지만 통상과 중소기업, 자동차, 산업정책, 전자산업 등 업종별 현황에도 정통하다.

한덕수는 규제 완화와 자율 경쟁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상공부 재직 시절 7개 업종별 규제법을 ‘공업발전법’으로 단일화하는 데 주역을 맡았다. 한미자동차 협상 당시 증빙자료를 일일이 챙기는 치밀함을 보여 미국이 “다음부터 한 실장을 빼주었으면 좋겠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에 파견됐을 때 알게 된 국제경제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최고의 신사 공무원’으로 평가받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화를 신고 30분~1시간정도 가벼운 산보를 즐긴다. 테니스 실력이 수준급이다. 늦게 배운 골프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책 읽기를 좋아해 신간은 빼놓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철저하게 절제한다. 말술이 많기로 유명한 기획원과 상공부에서 ‘왜 모두가 망가지는 식으로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술과 선을 분명히 그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행정고시 8회에 합격해 관세청에서 사무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현역복무와 겹쳐 경제관료로서 사실상의 첫 발은 옛 경제기획원에서 내딛었다.

예산실 예산총괄과 사무관으로 시작해 경제조정국 조정2ㆍ3과장을 지낸 뒤 1982년 주요부처간 인사교류 차원에서 옛 상공부로 이적했다.

한덕수는 상공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쳐 특허청장과 차관을 지냈다. 국장으로 승진할 때는 총무처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지적할 정도로 승진이 빨랐다.


그는 상공부 조직에 완전히 융화해 황두연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차관 등과 더불어 '상공부를 움직이는 경제기획원 출신 3인방'으로도 불렸다.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통상산업담당 경제비서관,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3월~2006년 7월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2007년 4월~2008년 2월까지 제38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2009년 2월~2012년 2월까지 3년 동안 주미대사를 맡았고 2012년 3월에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한국 FTA역사상 사회적 저항이 가장 거셌던 한미FTA는 한 회장이 밑그림을 그린 대표적 FTA다. 한 회장은 2006년 7월부터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 학력

한덕수는 전형적인 수재다. 경기 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상대(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경영학과가 상과대학 소속이었으나 1975년 서울대의 단과대학이 개편돼 현재는 경제학부가 사회과학대학 소속이고 경영학과는 경영대학 소속이다.

대학교 졸업 때 상대 수석을 차지해 대법원장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동창인 정운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정문수 인하대학교 교수와 절친하다.

노성태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고문과 이정우 경북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하버드대학교 동문이다.

한 회장(67학번)과 노 고문(65학번), 이 교수(68학번)는 서울대학교 동기는 아니지만 1970년 말~1980년 초에 걸쳐 비슷한 시기에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

◆ 가족관계

1년 연상인 부인 최아영씨와 사이에 자녀는 없다.

부인 최씨는 화가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유한크리넥스 등의 디자인을 남겼다. 최씨는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에 ‘애가 없어 그렇다’고 대답할 정도로 일에 몰두한다.

◆ 상훈

한덕수는 1971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할 때 대법원장상을 수상했다.

1992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고 2003년 주한미상공회의소가 한미 교류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암참어워드를 수상했다.

2007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첫 한국대표를 맡아 양국간 FTA 타결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칠레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인 대십자훈장을 수상했다.

2012년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만찬에서 한미 양국간 경제협력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 밴플리트상을 수상했다.

◆ 상훈

한덕수는 1971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할 때 대법원장상을 수상했다.

1992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고 2003년 주한미상공회의소가 한미 교류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암참어워드를 수상했다.

2007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첫 한국대표를 맡아 양국간 FTA 타결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칠레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인 대십자훈장을 수상했다.

2012년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만찬에서 한미 양국간 경제협력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 밴플리트상을 수상했다.

어록


“한미 FTA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정부는 우리 미래를 위해 한미 FTA는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가고 있다.”(2007/03/29, 국무총리 지명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시간이 가면서 계속 FTA 이행 상황을 리뷰하고 언제라도 관세인하에 대해 어느 한 쪽이 제기하면 논의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자동차 부분은 (오히려) 우리 기업에서 예외로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자동차 부품도 큰 것은 일단 예외조치 했지만 많은 부품들은 FTA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2014/11/10, 한ㆍ중FTA에서 자동차가 양국 모두의 양허(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해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우리 무역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항상 세계가 놀랄만한 저력을 발휘하며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수출입국 50년의 자신감과 열정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새로운 도전과제에 맞서 ‘제2의 무역입국’을 향해 나서야 합니다.”(2015/01/01, 2015년 신년사에서)

“우리가 TPP에 참여하지 않으면 9조 달러 교역 규모, 2.2조 달러 규모 원자재 교역에서 빠지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한국이 12국에 1200억 달러 정도 수출하는데 (TPP 참여 하지 않으면)그런 것들이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2015/01/06, 한국경제TV와 인터뷰에서)

◆ 평가

한덕수는 부하직원들에게 미시적이고 실증적 업무 접근을 요구한다. 명확하지 않게 작성된 보고서를 들고 오면 무조건 돌려보낸다. 그는 거시경제에도 밝지만 통상과 중소기업, 자동차, 산업정책, 전자산업 등 업종별 현황에도 정통하다.

한덕수는 규제 완화와 자율 경쟁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상공부 재직 시절 7개 업종별 규제법을 ‘공업발전법’으로 단일화하는 데 주역을 맡았다. 한미자동차 협상 당시 증빙자료를 일일이 챙기는 치밀함을 보여 미국이 “다음부터 한 실장을 빼주었으면 좋겠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에 파견됐을 때 알게 된 국제경제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최고의 신사 공무원’으로 평가받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화를 신고 30분~1시간정도 가벼운 산보를 즐긴다. 테니스 실력이 수준급이다. 늦게 배운 골프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책 읽기를 좋아해 신간은 빼놓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철저하게 절제한다. 말술이 많기로 유명한 기획원과 상공부에서 ‘왜 모두가 망가지는 식으로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술과 선을 분명히 그었다.

◆ 기타

제37대 한명숙 총리, 제38대 한덕수 총리, 제39대 한승수 총리는 모두 청주 한씨다. 청주 한씨는 조선시대 가장 많은 왕비를 낸 집안이다.

청주 한씨는 또 조선왕가와 사돈을 맺으면서 문과급제자 315명, 상신 12명, 대제학 1명, 공신 24명을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가다. 그 중 한명회와 한확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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