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성남시장 후보.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성남시장 후보를 둘러싼 ‘조폭 연루’ 의혹이 불거지며 판세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야당이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당초 성남시는 은수미 후보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졌지만 이제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는 은수미 후보의 공천을 번복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 여전히 후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다 경찰 수사로까지 일이 번진 만큼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2일 은 후보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조만간 은 후보를 직접 불러 조사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모씨가 4월26일 TV조선에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은수미 후보의 운전기사로 일했는데 월급과 유류비, 통행료 등 차량유지비를 은수미 후보가 아닌 성남의 지역기업 K사가 지급했다”고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K사는 ‘코마트레이드’라는 곳으로 중국 전자업체 ‘샤오미’의 국내 총판업체다. 이 회사의 대표 이모씨가 성남의 폭력조직인 ‘국제마피아파’ 출신으로 드러나 문제가 커졌다. 이씨는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하며 140억 원을 탈세한 혐의로 1년 가까이 도피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말 검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최씨에 따르면 지원은 지난해 초 끊겼는데 이씨가 도피를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이씨가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코마트레이드가 2016년 성남시로부터 ‘중소기업인 대상’을 수상하면서 3년 동안 지방세 세무조사를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이재명 후보가 은행장을 맡았던 주빌리은행에도 이씨가 기부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5년에는 코마트레이드가 성남시와 복지시설 환경개선 업무 협약을 맺으면서 이재명 후보가 이씨에게 “이 대표님. 성남 100만 시민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게다가 최씨는 은 후보와 관련한 일을 그만두고 4개월 만에 성남시청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기다.
은수미 후보와 이재명 후보는 정치공작성 음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은 후보의 캠프 측은 3일 "은 후보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최모씨"라는 표현이 최씨를 은 후보의 전속 운전기사로 오인하게끔 했다며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은 후보는 “최씨는 (이씨가 아닌) 성남의 한 사업가의 소개로 자원봉사 하겠다는 뜻을 밝혀와 간간히 도움을 받았을 뿐 조직국장 등이 대부분 운전했다”며 "최씨가 성남시에서 공무원으로 채용된 사실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최씨는 "어처구니가 없고 내 주장은 '팩트(사실)'“라며 ”자원봉사를 하려왔다는 말을 은 후보에게 한 적이 없다“고 다시 반격했다. 월급 1300만여 원을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을 그만 둔 뒤 은 후보로부터 연락 한 번 없었다는 것이다.
2016년 초 은 후보가 성남시 중원구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던 때 이씨가 은 후보의 선거 사무실을 직접 찾아 함께 찍은 사진도 논란을 낳고 있다. 2016년 1월 이씨가 운영하던 회사 블로그에 올라온 글에는 “은 의원의 북콘서트 출판기념회에서 의전활동 지원”이라고 써 있었다. 현재는 블로그가 폐쇄돼 제목과 글의 일부만 확인할 수 있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다른 업무도 아니고 직접 대면하며 시간을 보내는 운전기사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은 후보가 의원 시절부터 조폭과 거래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은 후보는 2016년 2월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안 통과에 반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계기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당시 무제한 토론자로 나서 무려 10시간 18분 동안 열변을 토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은 후보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노동운동이라는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물로도 잘 알려졌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되고는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1년6개월 동안 직접 미싱사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했다. 당시 강남 삼층집으로 본가가 이사를 갔는데 두어달에 한번씩 집에가면 동네 사람들이 너무 평온하고 행복해보여 생소했다고 한다.
1992년에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중앙위원 겸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다가 구속됐다. 이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고문을 당한 후유증을 지금도 앓고 있다.
6년 동안 복역하고는 출소해 학교로 돌아가 노동사회학 박사 학위를 얻었다.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전문위원회 위원을 거쳐 20대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비례공천 심사위원을 맡았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가 이화여대 출신이 아닌 여성 후보를 찾다가 “은수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락을 해왔다.
20대 총선에서는 낙마했지만 지난해 6월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올해 4월 성남시장 단수 후보로 공천받으면서 이재명 후보의 바통을 순조롭게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받았는데 이번 일로 복병을 만나게 됐다.
의혹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은 후보가 유명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불공정한 특혜를 거림낌 없이 받아들였다는 비난 여론도 거세다. 노동운동가 출신이 1년 동안이나 자원봉사자라는 말만 믿고 그 노동의 대가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보라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은수미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 4년 동안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며 기업의 갑횡포를 질타하고 교육실습을 빌미로 한 청소년 노동착취를 비판해왔던 사람”이라며 “명백한 근로자를 자원봉사인 줄 알았다고 한다면 엄연한 갑횡포이고 노동착취이자 자기기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금수저 출신 노동자의 편’으로 불리던 은 후보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된 셈이다.
"‘이 자리는 내 거야, 내가 얻은 자리야’ 생각하는 순간 정치하면 안 된다.” 은수미 후보가 했던 말의 무게에도 물음표가 붙게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