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을 핵심적 신사업으로 점찍고 막대한 투자를 벌이고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늦어 이른 시일에 성과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위탁생산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새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강조하고 있는데 결실을 거두기까지 갈 길이 멀다.
전자전문매체 에이낸드테크는 25일 "대만 TSMC가 7나노 반도체 양산을 공식화했다"며 "스마트폰과 서버,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사가 모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TSMC는 최근 7나노 미세공정을 활용한 반도체 위탁생산시설에서 대량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미 18곳의 고객사를 확보했고 연말까지 고객사를 50개 정도로 늘릴 계획도 내놓았다.
애플의 하반기 아이폰 신제품에 탑재될 A12 프로세서도 TSMC의 7나노 공정에서 양산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애플은 2016년부터 TSMC에만 아이폰과 아이패드 프로세서 위탁생산을 맡기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미세공정 기술 발전에 따른 성능 차이가 크다. 10나노에서 8나노로, 8나노에서 7나노로 크기가 작아질 수록 성능은 높아지게 된다. 특히 앞선 공정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고객사 물량 수주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TSMC는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10나노 공정을 상용화하며 고성능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시장을 실질적으로 양분했다. 이후 차세대 공정 개발에서 속도전을 벌였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8나노와 7나노 공정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며 여력이 분산된 탓에 TSMC가 7나노 개발에 앞서 나가며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7나노 반도체부터 완전히 새로운 EUV(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한다. 이 때문에 안정적 양산 체계를 갖추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단기간에 생산 비중을 높이기도 어렵다.
당분간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시장에서 TSMC가 7나노 공정을 앞세워 주요 고객사의 주문을 선점하며 삼성전자와 경쟁에서 앞서 나갈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위탁생산사업은 고객사와 협의 아래 진행되기 때문에 특정 공정의 양산 여부와 시기를 밝히기 어렵다"며 "공정 개발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남 사장은 삼성전자가 2월 착공한 화성 위탁생산 신공장 가동을 반등의 기회로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화성에 3년 동안 6조 원 이상을 들이기로 했는데 시스템반도체에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시설 투자를 벌이는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지난해 연간 1조 원 미만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점에 비춰 보면 매우 공격적 투자다.
김 사장은 기공식에서 "화성 위탁생산공장을 반도체사업의 중심지로 삼겠다"고 말했다. 올해 초 조직 개편에서 집무실도 화성사업장으로 옮기며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화성공장 가동이 2020년으로 예정돼 있어 이른 시일에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당분간 삼성전자가 TSMC와 수주 경쟁에서 앞세울 만한 장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도 TSMC와 비교하면 크게 밀린다.
TSMC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올해 시설 투자에 예정된 금액을 기존 11조 원 정도에서 13조 원 정도로 높여 내놓으며 향후 수년 동안 비슷한 수준의 투자가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최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분야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 경쟁력있는 사업 기반을 갖추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을 지키기 쉽지 않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TSMC는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의 금액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며 "위탁생산시장에서 추격을 허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