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정의선의 성과와 허물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1년 디트로이트 모터쇼 현장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슬로건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를 설명하고 있다.

정의선(45) 현대차 부회장에게 정몽구 회장은 정말 무거운 존재인 듯 하다. 정 부회장은 주변에서 경영승계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가 건재하시는데 왜 그런 말이 나오느냐”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할아버지 정주영 회장과 아버지 정몽구 회장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아침 6시30분에 출근해 ‘아침형 CEO’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워커홀릭인 것은 정주영 회장을 빼닮았다.

정 부회장은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활발한 대외활동을 했다.현대기아차그룹이 새로운 슬로건 ‘모던 프리미엄’을 내걸던 2011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신형 그랜저 발표 행사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언론 노출을 극히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신형 제네시스 발표장에도 참석은 했지만 연단에 올라가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올해에도 계속 되고 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고 지난 2월 북미 출장을 다녀온 것이 외부에 노출된 전부다. 다보스포럼은 9년째 참석해오던 일정이고 북미 출장은 현지공장 점검과 판매독려를 위해 긴급히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의 이런 조용한 행보는 오히려 경영 승계를 앞두고 ‘정중동’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영승계 구축에 따른 외부 저항이나 마찰 등을 고려해 가급적 대외노출을 자제하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정몽구 회장이 앞장서 일들을 처리하는 모양새가 더욱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신형 제네시스 발표, 현대제철 산재 등 굵직한 현안들은 정 회장이 직접 나서서 처리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 회장은 최근 유럽 출장에서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과 행보도 빼놓지 않았다. 정 부회장을 위한 정 회장의 길닦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 부회장은 1994년 현대정공에 과장으로 입사했으나 1년 만에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MBA 학위 취득 후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199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2002년까지 국내영업본부 영업담당 겸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 상무를 맡았다.

2002년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전무로 승진했고 2003년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2009년부터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취임했는데, ‘디자인 경영’을 통해 취임 2년 만에 기아차를 흑자전환시켰다. 정 부회장이 광폭 행보를 보여주던 때였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정 부회장은 2009년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기아차 경영의 성과를 기반으로 현대기아차 그룹의 얼굴로 떠올랐던 것이다.

경영능력과 관련해 정 부회장은 다른 재벌 3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평가가 좋다. 하지만 정 부회장에게도 허물이 있다. 바로 현대글로비스다.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설립된 뒤 계열사들이 물류관련 일감을 몰아주면서 급성장했다. 2004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이후 안정적 매출 구조 덕분에 주가가 급등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와 편법 자산증여 실태를 조사하고 공개했는데, 정 부회장도 이름이 올랐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에 최초로 출자한 금액이 20억 원 수준이었지만 2004년 상장된 이후 보유 주식가치가 약 2조 원으로 불어났다. 정몽구 회장의 재산이 정 부회장에게 간접적으로 이전됐다는 비난을 받았다.

현대글로비스는 2006년 현대기아차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또다시 관심을 받게 된다. 당시 검찰은 내부제보자 진술을 토대로 현대글로비스 본사를 압수수색했는데 수십억 원의 현금과 양도성예금증서가 들어 있는 금고가 발견됐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도 비자금 조성과 편법 증여에 관한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정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현대기아차그룹의 정 회장 지분을 물려받는데 동원할 수 있는 자금줄로 여전히 현대글로비스가 꼽힌다. 정 부회장도 정당하지 못한 상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세금 문제에서 발목이 잡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