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은 ‘양날의 칼’이다.
인수 이후 일시에 도약할 수 있지만 ‘승자의 저주’로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이나 LG생활건강처럼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기업이 있는 반면 금호그룹이나 웅진처럼 인수합병 실패로 위기를 겪은 곳도 있다.
이 때문에 회사가 인수합병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경영자의 능력은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제약업계에서는 김영진 한독 회장이 그런 평가를 받는다.
김영진 회장은 1954년 한독을 창업한 고 김신권 한독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김신권 명예회장은 평양북도 의주 출신의 한중 교역상으로 1954년 한독의 전신인 연합약품을 설립했다. 독일 제약사 훽스트(현 사노피)와 합작법인을 세우고 국내 최초 정제형 소화제 ‘훼스탈’ 등을 수입해 판매하며 회사를 키웠다.
김영진 회장은 1956년 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1984년 한독에 경영조정실 부장으로 입사했고 2년 동안 훽스트에서 파견 근무를 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1996년에 사장, 2002년에 부회장에 올랐고 2006년 회장에 취임하며 2세경영을 시작했다.
김영진 회장은 회장에 오르며 독립경영을 꿈꿨다.
당시 파트너사인 사노피와 협의를 통해 2006년부터 독립경영을 시작했고 2012년 10월에는 결국 사노피로부터 지분을 사며 합작관계를 정리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2013년 6월에는 회사이름도 ‘한독약품’에서 ‘한독’으로 바꿨다.
김 회장은 한독을 글로벌 제약사의 수입상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을 하는 글로벌 헬스케어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김 회장의 꿈은 출발부터 큰 시련을 겪었다.
정부가 2012년 일괄적으로 약가를 인하했는데 한독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약이 없었고 전문의약품을 수입해 파는 구조였기에 타격이 컸다.
한독 매출 성장은 둔화됐고 수익성은 악화됐다.
2013년 한독은 매출 3279억 원, 영업이익 75억 원이었는데 2015년 매출은 3584억 원, 영업이익은 62억 원으로 제자리를 맴돌았다.
김 회장은 인수합병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은 “독자경영으로 홀로서기에 나서면서 미래에 대한 고심 끝에 전문의약품 의존은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2014년 태평양제약의 제약사업 부문을 635억 원에 인수했다. 한독이 인수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깜짝 인수’였다.
태평양제약 인수에 나선 이유는 일반의약품 강화가 목적이었다. 태평양제약은 ‘케토톱’이라는 흥행제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케토톱은 2015년 매출이 214억 원이었지만 2017년 336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한독은 플라스타 생산공장 준공으로 케토톱 위탁생산에서 자체적 생산도 가능해졌다.
한독은 이후 체외진단 전문기업 엔비포스텍에 90억 원, 미국 건강기능식품업체 저스트시에 36억 원을 지분투자했으며 일본 원료의약품업체 테라벨류즈를 211억 원에 인수했다.
김 회장은 이를 통해 한독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엔비포스텍과 공동으로 체외 진단용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테라벨류즈의 원료를 이용해 숙취해소제 ‘레디큐’를 출시했다.
김 회장의 성과는 제넥신 투자를 통해 최근 화룡정점을 찍고 있다.
한독은 2012년 제넥신에 투자했고 2014년 3월에는 지분을 추가로 늘려 제넥신 최대주주에 올랐다. 2016년 9월말 기준으로 한독은 제넥신 지분 24.96%를 들고 있다.
제넥신은 최근 면역항암제 개발에서 성과를 내며 주가가 치솟고 있다.
한독과 제넥신은 ‘지속형 성장호르몬제(GX-H9)’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 신약은 제넥신의 지속형 기술인 ‘하이브리드FC’를 적용해 성장호르몬의 투여주기를 1일 1회에서 주 1회나 월 2회까지 늘린 신약이다.
제넥신은 20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내분비학회에서 이 신약을 6개월 동안 접종한 임상2상 데이터를 공개했는데 우수한 결과를 보여줬다.
1일 1회 맞는 성장호르몬은 2017년 기준 약 4조 원대의 글로벌 매출을 내고 있다. 접종주기가 크게 늘어난 제넥신의 성장호르몬 신약이 출시되면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