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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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혜 전 코레일 사장.
최연혜는 1956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뒤 독일 만하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코레일의 전신 철도청에서 철도운임 요금정책심의위원장과 차장을 역임했다.
코레일 출범 뒤 2007년 4월까지 코레일 부사장을 지냈다.
한국철도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 4월 한국철도대학 총장에 올랐다.
건설교통부 철도산업구조개혁추진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철도학회 부회장, 세계철도대학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대전 서구을 지역에서 출마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에게 패한 뒤 2013년 10월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지역구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 한국교통대학원 대학교 교수로도 재직해 왔고 같은 해 10월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 3월14일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사장직을 사퇴했다. 그동안 20대 총선에 나서지 않겠다며 "3년 임기를 모두 채울 것"이라고 강조해 왔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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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철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철도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코레일 114년 역사상 첫 여성 CEO다.
시베리아횡단철도 ‘잊혀진 대륙의 길을 찾아서’(2006) '벤츠 베토벤 분데스리가'(2013)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에 법과 원칙으로 끝까지 대응해 강단있다고 평가받았다.
2014년 4월 3박 4일 동안 평양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27개국 대표단과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국제열차를 26시간이나 타고 평양에 들어가는 첫 번째 남측 인사로 기록됐다.
평양에서 열린 OSJD 사장단 회의를 통해 2015년 OSJD 사장단 원탁회의와 물류분야 회의, 2019년 OSJD 사장단 정례회의의 서울 유치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철도의 위상과 저력을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로 평가받았다.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철도공사(RZD)사장 등 해외 철도관계자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유라시아이니셔티브의 핵심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실현의 적임자라는 말도 듣는다.
2014년 초만 해도 파업으로 조직 내 갈등과 공기업 개혁 등 당면 과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공사 창립 이후 최초 영업흑자들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철도관광벨트, 철도차량모형 전통주, 분천역 산타마을 등 아이디어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철도관광벨트는 O・V트레인, S트레인, DMZ트레인을 운행하며 약 10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고 생산유발 743억원, 취업유발 939명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낳았다.
2014년 10월21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최저임금을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2016년 3월 임기를 6개월 앞둔 상태에서 20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갑작스럽게 사퇴해 그동안 공언해왔던 20대 총선 불출마와 3년 임기 완수 약속을 모두 지키지 못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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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철도대학 운수경영과 교수를 맡았다.
2004년 11월 철도청에 들어가 한 달동안 차장으로 재직했다. 2005년터 한국철도공사 부사장이 됐다.
2년 동안 부사장을 지낸 뒤 2007년부터 4년간 한국철도대학 총장으로 일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대전 서구을 지역에서 출마했지만 민주당 의원에게 패한 뒤 해당지역의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 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2013년 10월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됐다.
2014년 12월 한국교통카드산업협회 제3대 회장에 선임됐다.
2016년 3월14일 임기를 6개월여 앞두고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 가족관계
◆ 상훈
◆ 상훈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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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 코레일의 현실처럼 지금 밖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몇 시간 후면 밝은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밝고 힘찬 아침은 어김없이 다가옵니다."(2013/10/2, 코레일 사장 취임사)
"국민의 사랑과 신뢰가 없는 공기업은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노사이기 이전에 국민에게 함께 봉사하는 공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철도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013/12/30 철도파업 종료시)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대륙철도를 염원해 온 코레일은 지난 3월, 국제철도협력기구 OSJD의 제휴 회원으로 가입하며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하는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앞으로 코레일은 물류운송 등 대륙철도 주력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유라시아 대륙의 공동 번영 시대를 여는 평화와 창조의 철도로 거듭나겠습니다." (2014/4/1 KTX 10주년 기념사)
"철도의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 굴뚝산업과 같은 재래 산업으로 인식하는 분도 있지만, 철도산업이야말로 창조경영의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코레일은 철도 인프라를 활용한 창조경제를 통해 지역균형 발전을 이룩하고 국가성장과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철도로 거듭나겠습니다." (2014/9/18 115주년 철도의 날 기념사)
"민영화를 반대한다. 수서법인 설립할 때도 민영화가 안되도록 여러 방지조항들을 반영했다. 공적기관에 지분을 준다든지 매각을 하더라도 인수받은 회사가 민간이라면 수서의 면허를 취소하는 등 방지 조항이 있다." (2014/10/21,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매번 대책을 발굴하며 변화를 시도했지만 내용과 근본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직원들의 근본적 체질개선과 안전기능 강화를 위해 이번 조직개편을 단행하게 됐다.”(2014/08/04, 연례회의에서)
◆ 사건/사고
2013년 10월 코레일 사장에 취임 한 뒤 그해 12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노조 집행부와 파업 참가자 7608명 모두를 직위 해제하고 노조 간부와 해고 노동자 등을 포함한 노조 집행부 200여명을 경찰에 고발하는 강수를 뒀다.
당시 파업을 주도해 검찰에 기소된 김명환 전 노조위원장 등은 2014년 12월22일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2013년 철도파업의 목적은 한국철도공사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것으로 위법"이라면서도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비추어 볼 때 당시 파업은 업무방해죄 요건인 '전격성'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4년 8월 코레일 노조와 39차례 교섭과 간담회를 통해 1개 과제를 제외한 개선안에 노사합의를 이끌어 냈으나, 조합원 투표로 집행부 불신임됨에 따라 마지막 남은 1개 과제를 이행하지 못하며 막판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신임 철도노조 위원장 당선이 확정된 직후부터 교섭을 재개해 휴일도 없는 마라톤 교섭을 진행해 방만경영 개선과제 이행을 최종적으로 끝냈다.
◆ 평가
철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철도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코레일 114년 역사상 첫 여성 CEO다.
시베리아횡단철도 ‘잊혀진 대륙의 길을 찾아서’(2006) '벤츠 베토벤 분데스리가'(2013)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에 법과 원칙으로 끝까지 대응해 강단있다고 평가받았다.
2014년 4월 3박 4일 동안 평양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27개국 대표단과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국제열차를 26시간이나 타고 평양에 들어가는 첫 번째 남측 인사로 기록됐다.
평양에서 열린 OSJD 사장단 회의를 통해 2015년 OSJD 사장단 원탁회의와 물류분야 회의, 2019년 OSJD 사장단 정례회의의 서울 유치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철도의 위상과 저력을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로 평가받았다.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철도공사(RZD)사장 등 해외 철도관계자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유라시아이니셔티브의 핵심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실현의 적임자라는 말도 듣는다.
2014년 초만 해도 파업으로 조직 내 갈등과 공기업 개혁 등 당면 과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공사 창립 이후 최초 영업흑자들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철도관광벨트, 철도차량모형 전통주, 분천역 산타마을 등 아이디어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철도관광벨트는 O・V트레인, S트레인, DMZ트레인을 운행하며 약 10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고 생산유발 743억원, 취업유발 939명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낳았다.
2014년 10월21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최저임금을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2016년 3월 임기를 6개월 앞둔 상태에서 20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갑작스럽게 사퇴해 그동안 공언해왔던 20대 총선 불출마와 3년 임기 완수 약속을 모두 지키지 못했다.
◆ 기타
2012년 4월 총선에서 당시 다른 예비후보를 제치고 대전 서구을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시 최 사장을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최 사장의 당선을 지원했다. 최연혜도 대전 서구을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