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지주사인 효성 사내이사에 장남 조현준 사장을 재선임하고 삼남 조현상 부사장을 신규로 선임했다. 조 회장과 조 사장이 탈세 등의 혐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삼남 조 부사장을 새로 이사에 포함함으로써 재판 결과에 대비하고 3세 승계 구도를 굳혀 경영 안정화를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제범죄에 연루된 재벌총수들이 잇따라 자리를 물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조 회장을 비롯해 재판 연루 임원들이 모두 이사에 재선임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조석래, 효성 경영안정 위해 삼남도 이사선임  
▲ 조현준(왼쪽) 효성 사장과 조현상 효성 부회장

효성은 오는 2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 조현상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을 상정할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조 부사장의 신규 사내이사 선임과 함께 조석래 회장, 조현준 사장, 이상운 부회장 등 기존 사내이사도 재선임된다. 또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감사위원 후보로 한민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조 회장의 삼남 조현상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새로 선임되면 효성의 사내이사진은 오너 일가 3명과 전문경영인 2명으로 구성된다. 조 회장이 조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내세운 것은 조 회장 자신과 장남 조현준 사장이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결과에 따라 경영공백이 생길 것에 대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조 부사장은 이번 등기 이사 선임으로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형 조 사장과 후계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 부사장은 산업자재PG장으로서 타이어코드 산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리고 세계 1위 에어백 업체인 독일 글로벌세이프티텍스타일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효성 지분을 9.18% 보유하고 있어 조 회장(10.32%), 조 사장(9.95%)에 이어 개인 3대주주다. 조 부사장은 이번 재판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2011년 외국환 거래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상운 부회장은 정윤택 사장과 함께 전문경영인으로서 효성 사내이사진을 구성하고 있지만 조 회장 부자와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여서 재선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부회장은 1973년 효성에 입사해 2002년 대표이사 사장이 된 뒤 올해로 13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조 회장을 옆에서 보필해왔다. 조 회장과 함께 탈세 배임 등의 혐의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어 도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효성의 사외이사 선임도 뒷말이 무성하다.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린 최중경 전 장관은 조 회장과 이 부회장의 경기고 동문이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로 견제의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지경부 장관에서부터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까지 지낸 경력으로 조 회장 문제와 관련해 로비창구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위원 후보인 한민구 교수의 경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현대엘레베이터 사외이사로 재직했는데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파생상품 계약으로 논란을 빚었다. 또 2009년부터 효성 사외이사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조 회장 친정체제 강화를 위한 인사라는 뒷말도 나온다.

  조석래, 효성 경영안정 위해 삼남도 이사선임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지난 1월 검찰에 출두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효성의 이번 이사 선임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효성그룹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사회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현재 선임 안건대로 주주총회에서 의결이 된다면 효성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 사외이사 6명으로 구성된다”며 “사내이사 5명 중 총수일가가 3명, 사외이사 6명 중 경기고 동문이 4명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내이사 5명 중 조석래 회장, 조현준 사장, 조현상 부사장, 이상운 부회장 등 4명이 현재 또는 과거 불법행위와 연루됐으며 나머지 한 명의 사내이사인 정윤택 사장 역시 효성의 재무본부장으로 분식회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효성 측은 그룹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경영을 위해 이런 이사 선임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효성 관계자는 “주총 안건은 이사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라며 “글로벌 경영능력을 갖춘 대주주가 등기이사를 맡아 책임감을 갖고 중장기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과 국가경쟁력에도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 1월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 이상우 부회장 등 효성그룹 임직원 5명을 탈세 및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의 범죄 혐의 액수는 회계분식 5010억 원, 조세포탈 1506억 원, 횡령 690억 원, 위법배당 500억 원으로 모두 7939억 원에 이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 심리로 지난 5일 열린 1차 공판에서 조 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 정부의 정책 으로 누적된 차명주식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조세를 포탈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해 혐의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조 회장에 대한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17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