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 원장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 원장.


이병기는 1947년 6월1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복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외무고시 8회 출신으로 주제네바 대표부와 주케냐 대사관 등에서 근무했다.

1981년 보안사령관을 거쳐 정무장관이 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보좌역할을 맡게 되면서 처음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으로 일했으며, 김영삼 정부에서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보와 제2차장을 역임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정치특보를 지내며 당시 야권 내 실세로 통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은 이후 정치권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았다.

2005년 박근혜 대통령이 이 내정자를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임명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13년 5월부터 주일 대사로 재직해 오다 2014년 6월10일 국가정보원장에 내정됐다.

2014년 7월18일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됐으나 2015년 2월 개각에서 김기춘 실장 후임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이병기는 언행이 신중하고 일처리에 빈틈이 없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외무고시를 거친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국제관계에 능통할 뿐 아니라 정치권에 오래 몸담아 정치감각과 정무 능력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2차장을 지내 국정원 업무에도 밝다.

또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해온 '전략통'이다.

이병기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낸 ‘일본통’이기도 하다.

2002년 대선 당시 불법 대선자금 전달 혐의로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은 것은 공직자로서 도덕성 문제와 관련해 치명적 약점으로 꼽힌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4년 제8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주제네바 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1980년 2월부터 주케냐 대사관 2등서기관으로 재직했다.

1981년 9월 정무장관이 된 노태우의 비서관 역할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82년 4월부터 체육부장관 비서관, 5월부터 내무부장관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1983년 7월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비서실장을 맡았으며 1985년 민주정의당 총재보좌역할을 담당했다.

1988년 3월부터 대통령 의전비서관 지냈다. 1990년 12월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을 맡았다. 당시 소련 및 중국과 국교수립 등 북방외교 정책입안에 참여했다.

1993년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다 1995년 국가안전기획부장 제2특보를 역임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으로 활동할 때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망명을 총괄 기획하고 주도해 성사시켰다.

1999년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2001년 12월 한나라당 총재 안보특보를 맡았으며 2002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정치특보를 지내며 당시 야권 내에서 핵심실세로 통하기도 했다. 2005년 5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고문을 맡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면서 최측근 인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2012년 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활동했다.

2013년 5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주일본 대사로 근무했다.

2014년 7월 18일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됐다.

2015년 2월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으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 학력

경복고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 상훈

어록


“이념이 편양되면 자꾸 국론이 분열되니까 이번 기회에 그런 것을 바로 잡겠다는 게 교육부의 뜻이다.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한테 자기중심의 세계관을 길러주는 역사교육을 해야하지 않겠냐.” (2015/10/23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북풍과 관련해 당시 1년간 출국금지를 당해 조사받았지만 기소당하지 않았고 재판도 받지 않았다.” (2014/07/07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북풍사건에 관한 질문에 / (참고) 북풍사건은 이 후보자가 안기부 제2차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의 사주를 받은 재미교포 사업가 윤홍준 씨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한 사건.)

“묵묵하게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정원이 댓글사건으로 심려를 끼쳤다. 기본으로 돌아가 본연의 임무에 정진하고 과감한 원 개혁을 추진하겠다. 위법한 명령에 대해 위법명령심사 청구센터를 만들어 누구나 명령을 받으면 위법한지 아닌지 심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전 직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는 등 어떠한 경우에도 기본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겠다.” (2014/10/28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지난 대선에서 논란이 된 '댓글사건'과 관련해)

“반드시 정치중립 서약을 지키겠다. 국정원 임무의 기본으로 돌아가 국민신뢰를 회복해 나가겠다. 과거 관행에 안주하기보다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앞으로 국가와 국민만을 바라보며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는데 최선을 다해 나아가겠다. 직원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선진 정보기관의 새 역사를 써주기 바란다.” (2014/07/18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 자리에서)

“저는 한 때 정치자금 전달 사건에 관여한 것을 가슴 깊이 후회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잘못한 것을 잘 알기에 국민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국정원이 정치개입이라는 말에 휩싸이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만 할 것을 약속드린다.” (2014/07/07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2003년 당시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불리는 불법 정치자금 전달 사건에 연루된 데 대해)

"국정원은 우선 국가를 보위할 책임이 있고 두 번째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세 번째는 국체(국가의 아이덴티티)를 보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기관이다.” (2014/06/10 국정원장 내정자 발표후 일본 주재 도쿄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 한일 관계를 본궤도에 올려놓고 내년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단계에서 떠나게 됐다.”(2014/06/10 국정원장 내정자 발표후 일본 주재 도쿄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 평가

이병기는 언행이 신중하고 일처리에 빈틈이 없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외무고시를 거친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국제관계에 능통할 뿐 아니라 정치권에 오래 몸담아 정치감각과 정무 능력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2차장을 지내 국정원 업무에도 밝다.

또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해온 '전략통'이다.

이병기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낸 ‘일본통’이기도 하다.

2002년 대선 당시 불법 대선자금 전달 혐의로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은 것은 공직자로서 도덕성 문제와 관련해 치명적 약점으로 꼽힌다.

◆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