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호 현대백화점그룹 총괄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경 부회장은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전문 경영인이다. 현대백화점에서 정지선 회장의 오너경영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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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청호 현대백화점그룹 총괄 부회장 <뉴시스> |
현대백화점그룹은 27일 정기 이사회에서 경청호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 부회장은 나이 어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곁에서 사실상 그룹을 총괄하며 경영을 이끌어왔다. 경 부회장의 대표이사 퇴진은 다음달 21일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경 부회장은 1975년 현대그룹에 입사해 1978년부터 현대백화점에서 근무해온 베테랑 경영인이다. 그룹 초기부터 일을 시작했기에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경 부회장은 2002년 그룹 기획조정본부장을 거쳐 2005년 기획조정본부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지선 회장이 2007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경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경 부회장은 어린 나이 탓에 경영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정 회장을 보필하면서 그룹의 살림을 맡았다. 경 부회장의 노력 덕분에 현대백화점은 유통업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룹 관계자는 “경 부회장은 그룹의 외형을 키우고 현대백화점을 국내 대표 유통전문기업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경 부회장이 7년간의 대표이사 생활을 청산하는 까닭에 대해서 현대백화점은 후진양성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룹 관계자는 “경 부회장이 이미 지난해부터 그려온 후진양성 계획을 이번에 실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 부회장은 앞으로 상근고문을 역임하면서 2선으로 물러나 조언자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 부회장의 급작스런 퇴진에 정 회장과 불화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은 “갈등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최근 정 회장의 행보를 보면 경 부회장의 흔적을 지우려는 모습이 여실히 보인다. 경 부회장은 그동안 ‘내실과 성장’이란 전략으로 현대백화점을 이끌어왔다. 그렇지만 경쟁사인 롯데나 신세계보다 경영의 과감성이 부족해 그동안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 회장은 이미 1월3일 신년사를 통해 자신의 경영 스타일을 바꿀 것임을 내비쳤다. 정 회장은 “한국의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 경영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라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올해 신사업인 아울렛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분명 ‘선 안정 후 성장’을 강조한 경 부회장의 전략과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재계는 이번 경 부회장의 퇴진으로 정 회장의 오너경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백화점은 불화설을 부인하면서도 “사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시각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기업이던 마찬가지”라고 말해 두 사람간 사업에 대한 견해차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경 부회장이 물러남에 따라 정 회장의 동생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해질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 부회장은 2011년 38살의 나이로 그룹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정 부회장의 올해 나이는 41세다. 전문가들은 40세부터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가한 형처럼 정 부회장도 같은 행보를 걸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