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제로레이팅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정부와 이동통신사가 통신비 인하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의미있는 정책으로 여겨진다.
이 위원장이 제로레이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망중립성 완화까지 추진할지 주목된다.
|
|
|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
11일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1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제정안을 의결했다.
제정안은 기간통신사업자가 콘텐츠 제공 서비스를 이용자에게 도달하지 못하도록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인터넷 사업자가 데이터 트래픽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속도제한을 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제정안은 사업자간 협의가 있을 경우 특정 서비스의 속도를 높이거나 비용을 할인해주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허용하는 정책으로도 풀이된다. 부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용자 차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실질적인 이용자의 이익침해가 발생하지 않고 △전체 이용자의 편익이나 후생증대 효과가 큰 경우 △서비스의 보안성과 안정성 확보 등 합리적인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도록 했다.
제로레이팅은 콘텐츠 데이터 비용의 일부를 콘텐츠 사업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으로 이용자 입장에서 요금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의 경우 이동통신사와 넷플릭스가 협의해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데 부과되는 데이터비용을 넷플릭스가 부담하는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SK텔레콤이 포켓몬고 개발사 나이앤틱과 제휴해 포켓몬고 게임 이용 중 발생하는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로레이팅에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관련 서비스를 개발·출시하는데 부담이 따랐다.
제로레이팅은 통신비용 부담을 콘텐츠 사업자가 지도록 하기 때문에 통신비 인하의 대안으로도 꼽힌다.
SK텔레콤은 7월27일 컨퍼런스콜에서 “제로레이팅이 확산되면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제로레이팅 확대를 주장했다.
이번 방통위 고시를 기점으로 제로레이팅 서비스가 널리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통신비 인하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데 통신사가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하게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사를 설득하기 위해 통신비 부담을 통신사 외에 콘텐츠 사업자 등 통신생태계 참여자들로 확대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방안이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통신비 인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로레이팅 도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위원장은 7월19일 인사청문회에서 “중소 콘텐츠 사업자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공정경쟁을 저해할 소지가 있지만 이용자 이익이 증대되는 측면이 있다”며 “사안별로 이용자이익 침해 및 공정경쟁 저해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망을 사용하는 모든 이용자들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망중립성 원칙이 계속 지켜질지도 관심사다. 데이터트래픽을 많이 유발해 통신망에 부담을 안기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통신망 투자와 유지 비용을 부과하도록 망중립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망중립성이 완화되면 이동통신사가 네이버와 카카오 등 콘텐츠 사업자에 통신비 부담을 전가할 수 있게 된다. 콘텐츠 사업자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지만 이동통신사들은 통신비 인하압력에서 다소 여유가 생긴다.
이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망중립성 완화와 관련해 신중하면서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콘텐츠 서비스 유통을 활성화하고 부가통신 사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통신산업 전반의 발전과 이용자 후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여당은 망중립성 완화에 더욱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네트워크 접속은 국민 기본권이라며 망중립성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망중립성의 법적 근거를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