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극장가를 점령한 ‘덩케르크’와 ‘군함도’는 여러모로 비교해 보면 좋을 만한 영화다.
국내개봉 타이밍만 놓고 보면 덩케르크가 다소 불운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값에 걸맞게 초반흥행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지만 군함도의 출격으로 롱런에 빨간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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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덩케르크' 스틸이미지. |
군함도는 스크린 독점논란과 평점테러까지 겪고 있지만 개봉 사흘째인 28일 150만 명을 넘었다. 벌써부터 올해 첫 ‘천만 영화’ 가능성도 나오지만 역시 최종 흥행결과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두 편 모두 7월말 성수기를 맞는 극장가에서 최고의 화제작인 것만은 틀림없다. 결국 관객의 지속적인 선택을 받는 것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콘텐츠 자체의 힘에 달렸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시대적 배경도 비슷한 대작인 데다 탈출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덩케르크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지역에 고립된 40만 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마침내 귀환하기까지 사투를 담았다.
군함도 역시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을 위해 이끌려간 조선인들의 목숨을 건 탈출에 초점이 맞춰졌다. 두 작품 모두 타이틀을 지명으로 붙인 점도 공교롭다.
이런저런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영화적 개성은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지 않고 특히 직접 극장에 가서 보지 않고 속단하기엔 곤란하다. 영화를 즐기는 이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덩케르크는 전쟁시기를 배경으로 한 건 맞지만 엄밀히 말해 전쟁영화가 아니다. 아군과 적군이 맞서 싸우는 숨 막히는 전투장면 같은 걸 기대했다면 전쟁영화의 문법에서 한참 벗어난 영화에 실망했을 공산이 크다. 독일군이라고는 영공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독일 공군기나 바다 밑에서 예고없이 공격을 해오는 어뢰 정도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격의 공포, 집으로 데려다 줄 배 앞에 끝도 없이 줄을 선 병사들의 행렬에 끼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 생존 앞에서 끝을 알 수 없는 탐욕, 승리하지 못한 채 살아 돌아가 환영받지 못할 것이란 수치심과 두려움. 조국을 위해 참전한 어린 병사들이 마주한 ‘진짜’ 적은 독일군이 아니었다.
덩케르크에는 재난영화나 전쟁영화에서 만날 법한 히어로형 주인공도 없다. 영국군 소년병사 토미(핀 화이트헤드)나 전투기 공군병사 파리어(톰 하디), 구출작전에 아버지와 함께 민간인으로 지원에 나서는 피터(톰 글린 카니) 등 여러 인물의 상항과 시점이 교차하며 사건이 진행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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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함도' 스틸이미지. |
영화 속에서 이들의 이름은 거의 부각되지 않고 개인적 사연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누구이고 왜 이 전쟁에 동원됐으며 갈 곳 또한 ‘홈(고국)’이란 것 외에 알 길이 없다.
놀란 감독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최대한 배제하도록 하면서도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어 들여 마치 참상을 실제로 경험하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영화장르가 지닌 최대의 장점인 영상과 음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군함도 역시 한국영화 제작규모로 보면 세트와 효과 등 규모면에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전쟁이 개인의 일상에 던진 고통과 비극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을 비추며 민족적 대의나 공동체 의식 같은 거창한 이념이 이기적인 생존본능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를 폭로한다.
하지만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오락적 재미가 큰 탓인지 비극적 역사를 소비했다거나 왜곡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또 한국영화 특유의 진부한 인물설정, 감정과잉에 따른 신파성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