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도체 관세' 압박에 대만 전략 바꾸는 중,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중요한 선례

▲ 미국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관세 압박에 대만 정부가 해외 투자를 적극 확대해 자국 기업의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꿔내고 있다. 이는 한국의 대응 전략에도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대만이 미국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관세 압박에 대응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TSMC를 비롯한 자국 기업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에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한 만큼 대만의 선례를 참고해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는 7일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경쟁력을 외교적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며 “하지만 최근에 이는 미국의 압박을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대만 정부는 그동안 TSMC의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반드시 자국 내에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스마트폰, 자동차와 군사무기 등에 쓰이는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가 사실상 대만 공장에서 거의 다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침공을 비롯한 위협에서 대만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로 작용했다. 따라서 반도체 기술력이 국가 안보와 외교에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로이터는 대만 정부가 9월 초 타이베이에서 열린 반도체 행사 ‘세미콘 타이완’에서 미국 및 유럽의 우호적 국가들과 반도체 산업의 성과를 공유하겠다고 밝힌 데 주목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TSMC를 비롯한 대만 기업들이 해외로 영역을 적극 확장해 공동의 번영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전과 분명히 달라진 입장을 보였다.

로이터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최근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반도체에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며 세계 정세에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대만이 TSMC를 비롯한 자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통상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이러한 태도 변화에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올해 1월 대만은 TSMC를 비롯한 기업의 현지 투자를 확대하는 대신 자국산 수출품의 관세를 낮추는 내용의 합의를 미국 트럼프 정부와 체결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결론을 내지 않았다. 대만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 이 문제를 추가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TSMC는 이미 미국 애리조나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10곳 이상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약속한 총 투자 금액은 2650억 달러(약 356조 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의 압박이 이어지자 대만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호적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반도체 관세' 압박에 대만 전략 바꾸는 중,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중요한 선례

▲ TSMC의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파운드리 1공장 사진. < TSMC >

대만 정부의 대응 방식은 한국에도 중요한 선례로 떠올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공장 투자 유치가 미국에 당면과제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서버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메모리반도체 물량 부족은 현재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자제품, 자동차 공급망에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미국이 자연히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첨단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메모리반도체를 수입에 대부분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려 할 이유가 충분하다.

러트닉 장관은 최근 마이크론의 미국 메모리반도체 공장 착공식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현지 생산 투자를 결정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도체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국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반도체 투자를 비롯한 여러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요구 사항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7월 보고서에서 한국이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어 경제 성장세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미국의 압박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첨단 제조업 재건을 추진하는 미국이 관세 압박을 통해 현지 투자 확대를 요구할 공산이 큰 만큼 한국 정부도 대응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CSIS는 한국이 단순히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자국 기업의 경쟁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이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지원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산업에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기술과 공급망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도 전했다.

SK하이닉스의 HBM 기술이 대표적 예시로 꼽혔다. HBM은 단순한 개별 부품을 넘어 인공지능 반도체의 사양을 결정하고 산업 발전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라이칭더 총통이 TSMC를 비롯한 대만 기업들의 해외 투자 확대를 바탕으로 공동의 번영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점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로이터는 “대만은 인공지능 산업 발전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안정적 반도체 공급망을 제공하는 국가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반도체 외교’ 역량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