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일본 반도체 공장 건설을 검토하면서 TSMC와 마이크론 등 일본 정부의 공격적 지원 정책에 수혜를 보는 기업들이 선례로 주목받고 있다. TSMC가 일본 기업들과 공동으로 설립한 반도체 생산 법인 JASM의 파운드리 공장.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과 현지 공급망 및 고객사 기반, 글로벌 생산 거점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SK하이닉스의 현지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블룸버그와 닛케이아시아 등 외신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는 일본 내 사업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SK하이닉스가 일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안, 합작법인 설립이나 공동 투자 등 여러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규모 시설 투자가 진행 중이거나 계획되어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글로벌 고객사들의 메모리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이유로 제시됐다.
최 회장은 일본에 제조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반도체를 생산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가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할 수 있다는 관측이 최근 국내외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는데 최 회장이 직접 이를 시인한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8월31일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한일 상공회의소 관계자 회의에서도 일본 내 여러 지역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과 용수가 충분하다면 모든 곳이 잠재적 후보에 포함될 수 있다고도 했다.
SK하이닉스가 일본에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면 한국과 중국에 집중되어 있는 생산 거점을 분산해 지정학적 리스크나 공급망 차질을 일부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이크론이나 키오시아, 샌디스크 등 경쟁 기업들이 이미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며 관련 공급망을 구축했다는 점도 다른 국가에 투자하는 것보다 유리한 요소로 꼽힌다.
특히 마이크론은 1조5천억 엔(약 13조 원)을 들이는 히로시마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지난 7월 착공했다.
블룸버그는 “일본은 반도체 장비 기업 도쿄일렉트론과 같은 SK하이닉스의 협력사는 물론 소니와 닌텐도 등 여러 고객사 기반도 갖추고 있다”며 “SK하이닉스의 투자 검토는 이들과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 지원 의지도 SK하이닉스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제조업 재건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핵심 공약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일본 정부는 이미 대만 TSMC의 공장 건설에 막대한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증명했다”고 보도했다.
▲ 웨이저자 TSMC 회장(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026년 2월5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TSMC의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논의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TSMC의 첨단 미세공정 파운드리 공장 유치는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재건 정책을 본격적으로 앞세운 뒤 이뤄낸 핵심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현재까지 일본에 투자를 예고한 금액은 6조 엔(약 52조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TSMC의 구마모토 공장 2곳이 절반인 3조 엔을 차지한다.
TSMC는 2024년 구마모토 1공장에서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을 시작했고 현재 2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신설되는 공장에는 3나노 미세공정 도입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8월에는 이와 별도로 TSMC와 소니의 이미지센서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도 발표됐다.
닛케이아시아는 “일본 정부의 공격적 보조금 지원 정책이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모두 끌어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그러나 버블경제 붕괴 시기를 지나면서 한국에 선두를 내줬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국가 경쟁력에 핵심으로 떠오르자 일본 정부는 자체 기술 개발과 해외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모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TSMC가 구마모토 공장 2곳을 건설하며 일본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만 1조2천억 엔(약 10조3천억 원) 안팎으로 파악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공장에도 최대 5360억 엔(약 4조6천억 원) 수준의 지원금을 제공한다고 2025년 9월 발표했다.
자연히 SK하이닉스도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면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 정책을 기대할 수 있다.
닛케이아시아는 지난 1일 별도의 기사에서 “일본과 같이 우호적 국가에 반도체 생산 거점을 구축한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지정학적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의 해외 투자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점, 미국도 메모리반도체 공장 유치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일본에 불리한 요소로 지목했다.
결국 닛케이아시아는 일본이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면 미국과 경쟁 및 한국의 규제라는 두 과제를 넘어서야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