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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트리온이 신약개발사로 도약하기 위해 25종의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셀트리온은 신약 후보물질 25종 개발과 3조 원대 생산시설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에 첨단바이오 분야에 쏟기로 한 예산과 별도 사업이지만 정부 투자에 힘입어 나오는 외부 기술을 셀트리온이 임상시험과 대량생산, 해외 판매로 연결한다면 국내 바이오 생태계 안에서 적지 않은 협업 성과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7일 정부와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7년도 총지출을 820조9천억 원으로 편성하고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에 역대 최대인 39조5천억 원을 배정했다.
국가 R&D 분류상 첨단바이오 관련 예산은 2조2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15.2% 늘었다.
정부는 첨단바이오를 소형모듈원자로(SMR), 우주항공, 양자 등과 함께 향후 10~20년 뒤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7대 시드(SEED)’ 분야로 선정했다. 새로운 치료 기술과 인공지능(AI)·바이오 융합기술,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기술 등을 확보하는 데 투자를 확대한다.
지역 R&D 예산도 올해보다 35.6% 증가한 4조5천억 원으로 편성했다.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실제 제품과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기술사업화와 기업 성장 지원에는 4조2천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 예산과 셀트리온 신약 개발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은 기술사업화와 오픈이노베이션이다.
대학과 공공연구기관, 바이오벤처는 정부 연구비를 활용해 새로운 질병 표적이나 치료 기술, 초기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할 수 있다. 셀트리온은 이 가운데 가능성이 높은 기술을 도입하거나 개발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뒤 임상시험과 허가, 대량생산, 해외 판매로 이어갈 수 있다.
신약 개발 초기에는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투자비를 회수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초기 연구의 위험을 나누고 기술을 개발한 중소 바이오기업이 임상 단계까지 성장하도록 지원하면 셀트리온이 검토할 수 있는 국내 신약 후보물질과 협력기업도 늘어날 가능성이 충분한 셈이다.
셀트리온은 이미 자체 연구뿐 아니라 외부 바이오기업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신약 후보물질을 확대하고 있다. AI 기술기업과 마이크로바이옴 및 항체 신약 전문기업 등과 협력하며 외부 기술을 내부 연구개발에 접목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첨단바이오 R&D 예산으로 지원하는 모든 분야가 셀트리온의 사업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세포치료제와 재생의료 등은 셀트리온이 현재 집중하는 항체 신약과 기술적 차이가 있다.
하지만 AI를 활용한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항체·약물 전달 플랫폼, 바이오기업 기술사업화 지원은 셀트리온의 신약 전략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새로운 기술과 초기 후보물질을 키우고 셀트리온이 임상과 상업화를 맡는 형태의 역할 분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정진 회장이 그리는 셀트리온의 2030년 모습은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신약에서도 매출을 내는 종합 바이오기업이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끝난 바이오의약품과 효능과 품질이 동등하도록 개발한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을 말한다.
서 회장은 2030년까지 셀트리온 전체 매출의 40%를 신약에서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미국에서 신약으로 허가받아 판매하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에 더해 독자 개발한 항암제와 비만치료제 등으로 신약 매출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셀트리온이 자체 개발하거나 외부 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신약 후보물질은 모두 25종이다. 올해 초 공개한 16종에서 개발 후보군이 확대됐다.
신약 포트폴리오는 항암제와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는 항암제다. 셀트리온은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 3종과 다중항체 후보물질 1종의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ADC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에 강한 항암 약물을 붙인 치료제다. 항체가 약물을 암세포까지 운반해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DC 후보물질 CT-P70은 비소세포폐암과 대장암, CT-P71은 요로상피암과 유방암·전립선암, CT-P73은 자궁경부암과 두경부암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다중항체는 하나의 항체가 암세포나 면역세포에 있는 두 개 이상의 표적을 동시에 찾아가도록 만든 치료제다. 위암과 유방암을 대상으로 개발하는 CT-P72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후보물질 4종은 모두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안전성과 적정 용량을 확인하는 임상 1상 단계에 들어갔다. ADC 후보물질 3종은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다.
패스트트랙은 기존 치료제로 충분한 효과를 보기 어려운 중증질환 치료제의 개발을 돕는 제도다. 지정된 기업은 임상시험 설계와 허가 절차를 FDA와 수시로 협의할 수 있어 개발 기간을 단축할 가능성이 커진다.
셀트리온은 ADC 후보물질 2종의 임상 1상 초기 단계를 올해 안에 마치고 2027년 상반기부터 주요 결과를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CT-P70은 2027년 3월 환자에게 투여할 용량을 구체화하는 다음 단계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후속 항암제 CT-P74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CT-P77도 임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비만치료제 분야에서는 CT-G32를 개발하고 있다. 이 후보물질은 체중과 혈당 조절 등에 관여하는 네 가지 표적에 동시에 작용해 체중을 줄이면서 근육 감소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셀트리온이 2028년까지 혁신 기반을 다지는 시기로 정하고 신약개발 등에 AI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진은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셀트리온 모습. <셀트리온>
셀트리온은 2027년 2월까지 CT-G32의 임상시험계획을 제출하고 같은 해 2분기 첫 환자 투약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먹는 비만치료제와 약효가 오래 지속돼 투약 횟수를 줄일 수 있는 치료제도 별도로 개발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2026년 말까지 신약 후보물질 5종, 2027년에는 8종을 임상 단계에 올릴 계획이다. 2028년에는 임상 단계 후보물질 수를 2026년 말보다 3배 이상 늘리고 ADC와 다중항체 분야에서는 2029년 첫 제품 상업화를 추진한다.
셀트리온은 2025년 연구개발에 4824억 원을 투입했다. 서 회장은 2026년부터 2028년까지를 혁신 기반을 다지는 시기로 정하고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시험, 생산, 판매 전반에 AI를 도입하기로 했다.
AI를 활용해 개발 초기부터 약효와 부작용 가능성, 대량생산에 적합한 물질인지를 예측하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후보물질을 일찍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신약 한 종을 개발하는 데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드는 만큼 개발 실패에 따른 손실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다.
서 회장은 개발에 성공한 신약과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2030년까지 인천 송도 4·5공장 건설에 1조2265억 원을 투자한다. 두 공장을 합친 원료의약품 생산능력은 18만 리터다. 미국 뉴저지 브랜치버그 공장 증설까지 마치면 셀트리온의 원료의약품 생산능력은 현재 31만6천 리터에서 57만1천 리터로 늘어난다.
계열사 셀트리온제약도 충북 지역에 약 2조 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해 사전충전형주사기(PFS) 생산시설을 확충한다. PFS는 필요한 양의 의약품을 주사기에 미리 채워 놓은 제품으로 별도 조제 과정 없이 바로 투여할 수 있다.
이 투자계획은 7월2일 충남 아산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공개됐다. 서 회장은 이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 행사에 참석했고 유영호 셀트리온제약 대표가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셀트리온제약은 먼저 2028년부터 2032년까지 약 1조 원을 투입해 1단계 공장을 건설하고 2032년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후 세계 시장의 수요에 따라 1조 원 규모의 2단계 투자를 추진한다. 투자가 모두 끝나면 PFS 생산능력은 연간 2천만 개에서 7천만 개로 늘어난다.
정부는 당시 재정·금융·규제·기술·세제·인력·인프라를 묶은 지원방안을 마련해 기업들의 충청권 투자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셀트리온을 비롯한 기업들은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와 충청권 차세대 첨단산업 투자협약도 맺었다.
지역 R&D 예산 확대도 셀트리온제약이 충북에 새 공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전문인력 양성과 지역 대학·연구기관 및 바이오기업과의 협력 기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확대는 그만큼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크게 보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며 “정부 투자가 기업의 연구개발을 촉진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는 만큼 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정책으로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