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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회장 |
이탈리아 명차 '페라리'의 수장이 23년 만에 바뀐다.
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67) 페라리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 CEO가 자리를 잇는다고 10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페라리는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 산하에 있으며 페라리 지분의 90%를 피아트가 보유하고 있다. 현재 페라리의 독립적 경영이 보장되고 있고 판매점도 따로 운영된다. 페라리의 판매대수는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 전체의 0.2%에 불과하지만 전체 영업이익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 23년 만의 수장 교체, 왜?
이번 수장 교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우선 최근 6년 동안 페라리가 거둔 부진한 F1 성적에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것이다.
페라리는 경주팀으로 시작한 자동차회사로 F1의 전통적 강자로 꼽힌다. 페라리=F1이라는 공식도 성립됐다. 그러나 2008년 이후 페라리는 F1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성적 부진이 이어지자 페라리 F1팀의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감독은 지난 4월 6년 만에 팀을 떠났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드라이버 펠리피 마사도 8년 만에 팀을 떠났다.
지난주 이탈리아에서 열린 비즈니스 회의에서 마르치오네 CEO는 몬테제몰로 회장에 대해 뛰어난 경영성과를 이뤄냈다고 평가했으나 “페라리가 2008년 이후 아무런 우승 타이틀도 거머쥐지 못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F1은 일반적 광고를 하지 않는 페라리의 존재와 기술력을 널리 알리는 수단이다. 페라리의 지분 90%를 가지고 있는 피아트는 페라리가 F1에서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더이상 묵인할 수 없었던 셈이다.
또다른 의미는 회장 교체일인 10월13일이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날이라는 점이다. 수장 교체가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완성과 본사이전 등 새로운 시대를 맞는 페라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몬테제를로 회장이 그동안 페라리의 독립적 경영을 고수해왔던 것과 달리 마르치오네 CEO는 페라리를 피아트와 통합해 피아트의 브랜드이미지를 높이려 하고 있다. 10월13일은 수장이 바뀌는 날인 동시에 페라리의 경영방식이 바뀌는 날이기도 한 셈이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별도로 낸 성명을 통해 “나는 잊을 수 없는 23년을 보내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페라리가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의 뉴욕증시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이는 새롭고 다른 장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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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 CEO(좌)와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회장 |
◆ “우린 차를 팔지 않는다. 꿈을 판다.”
몬테제몰로 회장의 경영철학은 매우 뚜렷하다. 생산량을 줄여서라도 브랜드가치를 높게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우리는 차를 팔지 않는다. 꿈을 판다”고 말한다. 차를 통해 환상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수요를 넘어서게 공급하지 않는다는 페라리만의 원칙도 만들어 지켜왔다. 그의 경영방침 아래 페라리는 그동안 소비자의 취향을 철저히 반영해 차를 만들었다. 세상에 단 한 대뿐인 차를 만들기도 했다.
이 때문에 페라리 계약자는 평균 1년에서 1년 반 정도 기다려야 한다. 고객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기다린다.
지난해 페라리는 전 세계에서 주문이 쇄도했지만 오히려 판매대수를 줄였다.
페라리의 판매대수는 2012년에 사상 최고치인 7300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희소가치를 위해 2013년 판매대수는 6922대로 전년보다 5% 감소시켰다.
그의 이런 전략에 힘입어 페라리는 올해 영국 컨설팅 전문기업인 브랜드 파이낸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 조사에서 코카콜라, 구글, 디즈니 등을 제치고 2년 연속 1위 기업으로 선정됐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1973년 페라리의 F1 레이싱팀 매니저로 페라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 뒤 피아트그룹에 몸담다 1991년 몰락하던 페라리에 CEO로 전격 발탁됐다.
취임 이후 그는 F1에서 우승신화를 써내려갔고 경영난에 빠졌던 페라리를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말 연간 3천여 대에 불과했던 페라리 생산대수는 2012년 이후 7천 대를 넘어섰다.
당시 그는 페라리 재건을 위해서 3가지 목표를 세웠다. 기술과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해 과거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미래 비전을 반영하는 차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또 모든 공장과 사무실을 전부 리모델링하며 젊은 조직을 만들었다. 당시 페라리 공장은 유럽에서 가장 작업환경이 좋은 곳으로 뽑히기도 했다.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기자는 목표도 세웠다. F1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반드시 승리하자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브랜드 가치는 급격히 올라갔다.
자동차 회사의 핵심인 신차개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적자에 시달려 비용삭감에 힘쓸 때도 연구개발비는 줄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