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섬이 자체 브랜드의 성장이 정체되며 수익성이 후퇴하고 있다. 사진은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타임’ 플래그십 매장. <한섬>
특히 배당정책 변화 시점이 현대백화점그룹의 단일 지주사 체제 출범과 맞물려 있어, 단순 주주환원을 넘어 지주사 현대지에프홀딩스를 뒷받침하고 오너일가의 지배력 기반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1일 한섬의 배당 흐름을 종합해 보면 실적 둔화에도 불구하고 배당 비율을 공격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한섬은 2019년 주당 450원(시가배당률 1.5%)의 배당금에서 출발해 2020년 450원, 2021년 600원으로 상승한 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750원을 유지하며 꾸준한 상향 기조를 이어왔다. 주가 조정까지 맞물리면서 시가배당률은 1.5%대에서 3~5%대로 뛰었다.
배당성향을 살펴보면 흐름은 더욱 뚜렷하다.
한섬의 배당성향은 2022년 13.4%에서 2023년 19.6%, 2024년에는 36.1%까지 급등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023년 전년 대비 40.3%, 2024년 36.8% 감소했음에도 배당성향은 오히려 큰 폭으로 확대한 셈이다.
한섬은 향후에도 적극적인 배당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한섬은 2024년 11월 중장기 배당 정책을 발표했다. 2024년부터 2027년까지 4년 간 별도기준 영업이익의 15% 이상을 배당에 투입하고, 주당 최소 750원의 액면 배당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다.
업계 평균 배당성향이 10~20%대, 시가배당률이 2~3% 수준에 머무는 패션·소비재 업황을 감안하면, 한섬의 ‘영업이익 연동 + 배당 하한 보장’ 구조는 상당히 공격적 정책으로 평가된다. 영업이익이 10~20%만 더 줄여도 배당성향이 40%를 가볍게 넘어설 수 있는 설계다.
조소정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섬의 기업가치 제고 방안에 따르면 최저 배당금은 750원이고 배당수익률은 약 5% 수준”이라며 “배당 수익률을 고려한 방어적 매력과 향후 실적 회복 가능성을 감안하면 전략적 매수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배당 기조가 한섬이 보유한 현금이 투자보다 지배구조 상단으로 유입되는 비중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주환원이라는 명분 뒤에서 오너 지배력과 지주사 체제를 떠받치는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23년 11월 단일 지주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를 출범시키며 공식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주요 계열사를 지주사 아래로 편입해 유통·패션·식품·리빙 전 사업군을 단일 컨트롤타워 체제로 재편했다.
현대지에프홀딩스는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지주사이지만 자체 사업을 보유하지 않는 구조적 특성상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이 주요 수입원이다. 자회사에서 올라온 배당이 정지선·정교선 형제에게 지급되는 배당과 지분 매입 재원의 ‘원천 자금’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 한섬이 수익성 침체에도 불구하고 배당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열린 한섬 태국 현지 패션쇼. <현대백화점그룹>
지분 구조를 들여다보면 배당의 흐름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한섬의 최대주주는 현대홈쇼핑으로, 인수 이후 공개 매수와 추가 취득을 거쳐 지분율을 40.5%까지 끌어올렸다. 한섬은 지난해 총 161억 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으며 이 가운데 약 65억 원이 현대홈쇼핑으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홈쇼핑의 지분 57.36%를 보유한 현대지에프홀딩스에는 37억 원가량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현물출자 등을 거치며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을 각각 39.7%, 29.1% 확보했다. 지주사가 자회사 배당을 재원으로 다시 오너 일가에 배당을 지급하면 이는 △지배력 유지 △공개매수·지분 매입 등 지배구조 재편 비용 △장기 승계 재원으로 재투입될 수 있다.
한섬의 배당 정책을 두고 투자 여력이 제한되고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패션 업황이 둔화되는 시점에 배당성향을 높이는 것은 중장기 투자 여력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패션 산업은 온라인 직접판매(D2C) 확대와 SPA·글로벌 럭셔리 간 양극화, 재고 및 할인 경쟁 심화 등 구조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이런 환경에서 배당성향을 30~40% 구간까지 끌어올리는 결정은 △자체 브랜드 글로벌화 △온라인 채널 전환 투자 △라이프스타일·뷰티 등 신규 카테고리 확장과 같은 중장기 성장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 있는 내부 유보를 일부 줄이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섬 관계자는 “한섬은 정부에서 국내 증시 저평가 문제 해결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상장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부응하고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해 공시했다”며 “주주환원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기존 사업의 수익성 강화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지속적으로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