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3사 미국 고객사 중심축 이동, 빅3 대신 리비안 슬레이트 루시드 뜬다

▲ 리비안이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행사장에 전시한 R2 차량을 놓고 방문객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 ‘빅3’ 완성차 고객사와 맺어온 관계가 멀어지고 있다.

애초 빅3와 협업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까지 진행했는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리비안, 루시드모터스, 슬레이트 등 전기차 스타트업과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고 성과를 내고 있다. 이를테면 고객사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로버트 J 스캐린지 리비안 최고경영자(CEO)는 16일(현지시각) 기술전문지 스트래터처리 인터뷰에서 “회사 전체가 신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R2 출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리비안은 지난해 11월8일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5년 동안 67기가와트시(GWh) 용량의 배터리를 보급형 전기차 R2에 탑재해 2026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장기 공급계약을 맺은 만큼 리비안의 성과가 LG에너지솔루션에게도 미국 배터리 판매 실적과 직결되는데 리비안이 이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SK온의 배터리 고객사 슬레이트는 내년 말 출시 예정인 전기 픽업트럭인 ‘오토’로 15만 건 이상의 사전 주문을 받았다고 IT전문지 테크크런치가 16일 보도했다. 

마크 윈터호프 루시드모터스 CEO는 10일 블룸버그를 통해 “올해 전기차 생산 목표는 1만8천 대였는데 이를 순조롭게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시드모터스는 ‘루시드에어 그랜드투어링’ 차량에 삼성SDI 배터리를 쓴다.  

한국 배터리 고객사인 리비안, 슬레이트, 루시드모터스 등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신규 업체임에도 판매나 생산 등 측면에서 각자 성과를 내는 모양새다.

이와 같은 고객사의 선전은 한국 배터리 기업에 반등 계기가 될 수 있다. 포드, GM, 스텔란티스 등 K배터리의 기존 협업사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일명 미국 빅3로 불리는 포드, GM, 스텔란티스는 전기차 투자를 축소하고 인력 감축에 나섰다. 이에 한국 배터리 3사와 협력관계까지 여파가 미쳤다. 

SK온은 포드의 전기차 부진에 11일 배터리 합작법인을 완전히 청산한다고 공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5월8일 GM으로부터 미시간주 합작공장을 인수했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합작공장에 일부 라인을 전기차 대신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전기차 ‘캐즘’과 미국 정부의 지원책 축소 등 외부 악재가 작용하면서 만들어졌다. 트럼프 정부가 내연기관차로 전환하라며 정치적 압박까지 더해 어쩔 수 없던 결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5일자 기사에서 “전기차는 미국 완성차 제조사에 골칫거리”라고 평가했다.
 
K배터리 3사 미국 고객사 중심축 이동, 빅3 대신 리비안 슬레이트 루시드 뜬다

▲ 루시드모터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자동차 박람회에 꾸린 전시 부스에 11월20일 관람객이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미국 빅3와 협업을 발판으로 이미 현지에 다수의 공장을 건설하거나 운영하는 한국 배터리 3사는 곤란한 처지에 내몰렸다.

이제 와서 투자를 중단하기 어렵고 미래 시장 성장도 대비해야 하는 만큼 한국 배터리 기업은 빅3의 수요를 대체할 고객사를 서둘러 찾아야 한다. 따라서 ‘제2의 테슬라’로 주목 받는 리비안과 루시드모터스, 슬레이트 등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리비안과 루시드모터스, 슬레이트 등은 내연기관 차량으로 생산 전환도 사실상 불가능해 시장 상황이 어려워도 전기차 보급 확대에 주력할 공산이 크다. 더구나 미국 빅3 업체가 전기차 사업을 잇달아 축소하거나 늦춰 후발주자들로서 성장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스캐린지 CEO는 11월4일 진행한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R2 개발은 매우 낙관적”이라며 성공에 자신감을 보였다. 

리비안은 이번 달 11일에 연 기술 행사에서 테슬라의 뒤를 따라 자율주행과 전용 반도체까지 자체 개발해 완전한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슬레이트는 포드가 최근 단종한 전기 픽업트럭 부문에서 SK온 배터리를 탑재한 중저가 트럭으로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하고 있다. 

테크크런치는 “포드를 비롯한 경쟁사가 전기차 라인업을 축소해 슬레이트가 초기에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전부터 테슬라의 잠재적 대항마로 꼽던 루시드모터스 또한 8월7일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으로 충전 없이 1205㎞를 주행해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요컨대 유망 전기차 스타트업은 한국 배터리 3사에게 미국 빅3 수요를 대체할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다.

다만 리비안과 루시드모터스, 슬레이트는 빅3보다 기업 규모나 생산 설비가 부족해 애초 예측했던 빅3의 수요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기차 전문매체 인사이드EV는 “전기차 신규 업체는 막대한 자본과 내연기관 엔진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완성차 업체와 경쟁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