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크고 그동안 폭락과 폭등을 반복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 국면에서 벌어지는 이번 폭락 사태는 다른 시사점을 보여준다. 사진은 가상화폐 그래픽 이미지. <연합뉴스>
인공지능 거품론에 더해 최근에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발 증시폭락 우려도 나온다.
비트코인은 지난 10월7일 12만4310달러(약 1억8327만 원)로 최고가를 찍은 뒤 11월22일 8만4209달러(약 1억2414만 원)로 약 30%가 빠졌다. 그 이후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증시 폭락에서는 투기성이 강한 자산들이 맨먼저 얻어맞는다.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크고 그동안 폭락과 폭등을 반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과정의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 국면에서 벌어지는 이번 폭락은 다른 시사점을 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암호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의회는 민간기업들이 달러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지니어스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정부의 이런 암호화폐 육성 및 제도권 편입에 발맞춰서 시장에서는 암호화폐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과 막대한 차입 구매를 허용하는 투기가 난무했다. 10배, 20배, 심지어 100배 레버리지를 주는 투자가 성행했다. 퍼프스(perps)로 불리는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도 유행했다.
이런 레버리지 투자가 올해 비트코인 등의 급격한 상승을 추동했다. 하지만 지난 10월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이런 레버리지 투자는 폭락의 폭탄이 됐다. 발표 직후 비트코인 가격 급락에 191억달러(약 28조1591억 원) 규모의 선물이 강제 청산됐다.
이번 암호화폐 폭락 직전인 지난 9월 말 암호화폐 구매를 위한 차입금은 740억 달러(약 109조908억 원)에 달했다. 암호화폐 거래 사이클에서 이전 고점 국면이던 2021년 말은 690억 달러(약 101조7198억 원)였다.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 등으로 인한 암호화폐 폭락은 증시에도 충격을 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주식, 특히 나스닥 및 성장주와의 상관관계가 크케 높아졌고 '고위험 자산'으로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화됐다.
비트코인과 나스닥100 상관계수가 위험 선호 국면에서 0.5~0.8 수준까지 올라간 사례가 보고됐다. ETF·기관 편입으로 코인이 사실상 주식 베타를 증폭하는 자산처럼 행동하고 있다.
비트코인 ETF가 시장에 출시되고 암호화폐를 사들여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쓰는 '크립토 트레저리' 기업의 등장 등으로 암호화폐와 증시의 상관성은 더욱 커졌다. 이번 폭락 사태 때 세계 최다로 비트코인을 보유한 회사 스트래티지의 주가는 60%나 폭락했다.
기관·개인 포트폴리오 안에서 암호화폐는 주식과 같은 리스크 자산 바스켓에 들어가 있어 한쪽 큰 손실이 나면 다른 쪽을 팔아 현금을 만드는 '동시 매도'가 발생했다. 이는 증시를 끌어내리는 뇌관 역할을 했다. 높은 레버리지로 암호화폐 투자를 한 투자자가 손실을 메우기 위해 주식을 파는 경우가 늘어 주가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비트코인을 '투기 열기 지표'로 보는 알고리즘·퀀트가 많아 비트코인 급락이 위험회피 신호가 되면 성장주·기술주 중심으로 매도가 확산될 수 있다.
인터액티브 브로커스의 수석전략가 스티브 사스닉은 시엔비시(CNBC)와 회견에서 "현재 비트코인은 투기열기를 진단하는 지표로 사용된다"며 "내가 인지하고 당신이 인지하면 알고리즘도 인지한다. 이에 따라 돈이 이성적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그쪽으로 배분된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는 암호화폐 폭락이 증시 폭락으로 단번에 이어지진 않고 있다. 이번에 암호화폐 시총은 피크 대비 1조 달러(약 1474조2천억 원) 이상 증발했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여전히 연초 대비 두 자릿수 상승 구간에 있다. 증시는 조정 속 강세장을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등이 분석에 따르면 은행 및 보험사들의 암호화폐 직접 노출은 아직 제한적이고 대부분의 노출은 ETF·상장사 지분·파생상품 등 '간접 보유'에 그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시스템 위기로 번질 구조는 현재까지는 약한 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친암호화폐 정책에 따라 내년에 지니어스법이 발효됨에 따라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오면 얘기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니어스법에 따라 미국에서는 초대형 빅테크 플랫폼 회사를 포함해 모든 형태의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불리는 암호화폐 자산 형태로 자신들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존재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확실히 끌어들어서 규제하고 진흥하려는 목적보다는 기존의 긍융규제를 피하는 구멍될 수 있다.
지니어스법은 달러 연동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1로 현금·단기 미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 보유를 의무화하고 준비금 내역의 정기 공개를 요구한다. 발행사는 연방 또는 승인된 주 규제기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이상거래 보고, 발행·상환 시 법 집행기관의 동결·회수 명령에 응할 의무도 포함된다.
표면적으로는 규제 도입이나 특정 영역에서는 탈규제·규제 우회 효과를 만들고 동시에 중앙은행·전통 통화정책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 법은 요건을 충족한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을 증권·상품 정의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해 증권거래위원회(SEC)·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관할 밖으로 빼내고 은행 규제 체계로 넣었다. 그 결과 스테이블코인을 설계하면 일부 자본시장 규제를 우회하면서 동시에 예금보험·예금자 보호는 받지 않는 별도 영역이 생겨 민간화폐인 '제3의 돈' 공간이 커질 수 있다.
일정 규모 이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해 연방 당국이 아니라 주 당국의 규제를 받고 영업할 수 있게 했다. 일부 주의 느슨한 규제를 전국적 사업의 발판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겉으로는 '엄격한 준비금·공시'가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규제 사각지대와 민간화폐 영역을 키워 금융시스템 주변부를 탈규제화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을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 유사물'처럼 결제·저축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전통 은행의 예금기반이 잠식될 수 있다. 대규모 스테이블코인이 국내·국경간 결제에 널리 쓰일 경우 상업은행의 예금과 중앙은행 준비금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통화량 관리와 통화정책 파급경로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이 법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은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투자자들은 사실상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을 만들려 한다. 이렇게 되면 중앙은행 기준금리와 무관한 '민간 금리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 같은 1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지만 각 코인의 위험·유동성이 달라져 '돈은 하나'라는 원칙이 흔들리고 정책금리의 파급력이 떨어진다.
이 법은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상응 규제체계'를 갖춘 경우에 한해 미국 내 유통을 허용한다. 규제를 충족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신흥국에서 비공식 달러화 수단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는 해당국 중앙은행·통화정책을 약화시키는 '디지털 달러화'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지니어스법에서 가장 큰 결점은 스테이블코인 폭락과 붕괴의 본질적 위험을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제당국은 강력한 자본, 유동성 등에서 안전장치를 처방하는 것을 막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파산 등 위험에 처하면 누가 개입해서 어떤 권한으로 그 위험이 실물경제에 파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모호하다.
암호화폐 업계는 지난 2024년 미국 대선 등 선거에서 기업 기부금의 44%를 차지했다.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로서 1순위인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실리콘밸리의 암화화폐 업계가 키운 정치인이다.
암호화폐 업계 일각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네트워크 국가' 운동은 금융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본다. 최대 코인거래소 회사인 코인베이스의 최고경영자 브리언 암스트롱 등이 핵심 주도자인 이 운동은 정부의 사법권에서 벗어나서 암호화폐로 연결되는 사회네트워크를 조직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는 국민국가로부터 외교적 인정을 받겠다고 한다.
이 운동은 금융위기 이후의 혼란을 오히려 자신들의 비전을 추진할 기회로 본다. 피터 틸, 샘 올트먼 등이 후원자인 온라인 커뮤니티 프락시스는 자신들의 누리집에서 "지역 공동체가 해체되고 국민국가가 무너지면 우리는 디지털 국가가 국민국가 위에 서는 플리프닝(이더리움이 비트코인을 제치고 가장 가치 있는 암호화폐가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