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폴란드 잠수함 수주 실패에도 한-폴란드 방산 협력 관계 유지를 위해 후속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오션이 최근 폴란드의 대규모 잠수함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정부는 되레 퇴역 잠수함 '장보고함' 제공 방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폴란드가 K방산의 핵심 고객인 만큼 한-폴란드 관계를 강화하려는 정부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일 정부와 방산 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폴란드와 방산 협력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퇴역 잠수함 '장보고함(SS-I)' 제공 방안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앞서 한화오션은 폴란드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인 '오르카(Orka)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폴란드 정부는 치열한 6파전 끝에 최종 파트너로 한국이 아닌 스웨덴 사브(Saab)를 낙점했다.
이번에 선정된 사브는 1937년 설립된 스웨덴의 대표 방산 기업이다. 과거 자동차 제조사로 대중에게 알려졌으나 본업은 전투기 그리펜(Gripen)과 대전차 무기 NLAW, 칼 구스타프 등을 생산하는 북유럽 안보의 핵심 기업이다.
오르카 프로젝트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발트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폴란드 해군이 신형 잠수함 3척을 도입해 해상 방위력을 강화하려 추진하는 사업이다. 사업 규모는 약 100억 즐로티(약 4조239억 원)에 달한다. 유지·운영비까지 포함하면 8조 원에 육박한다.
이번 수주전은 세계 방산 강국들이 총출동했다. 한국의 한화오션을 비롯해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 스웨덴 사브,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스페인 나반티아, 프랑스 나발그룹 등 6개 업체가 참여해 각축을 벌였다.
한화오션은 장보고-III(KSS-III) 잠수함을 앞세워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의 긴 잠항 능력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기술, 납기 단축 능력 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납기 단축 능력은 K방산의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사브가 제안한 'A26 블레킹게(Blekinge)'급 잠수함은 수심이 얕고 염도가 낮은 발트해의 특수한 환경에 최적화된 모델로 평가받는다. 사브 측은 독자적인 '고스트(Ghost)' 기술을 적용해 피탐지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고 강조해 왔다.
고스트 시스템은 A26에 적용된 소음 및 진동 감소 기술들을 합친 것이다. 고스트 기술 덕분에 A26이 수중에서 멈춰있으면 적 구축함이나 해상초계기는 탐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울러 사브는 현지 조선소 투자, 유지보수 거점 구축, 폴란드산 무기 구매 등 '정치·산업·군사'가 결합 된 패키지 전략으로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폴란드 정부는 내년 2분기 최종 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수주전은 유럽 방산시장의 경쟁 양상이 이미 '패키지형 종합 제안'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풀이된다. 가격·성능 경쟁과 현지 생산·산업 투자·공급망 재편까지 포함된 복합형 경쟁이 표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한화오션은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패배했지만 이와 별도로 우리 정부는 폴란드와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부는 장보고함 제공을 '전략적 카드'로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서면 입장을 통해 "도태 잠수함 양도는 방산 수출 영향 등을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며 장보고함 제공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대통령실도 같은 날 폴란드가 한국이 아닌 스웨덴 방산기업 사브를 신형 잠수함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을 두고 "정부는 폴란드의 결정을 존중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방산 협력을 유지 및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며 한국-폴란드 방산 협력에 무게를 실었다.
폴란드는 2022년 이후 △현대로템의 K2 전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천무 다연장로켓 등 220억 달러(약 32조3400억 원)에 이르는 한국산 무기체계를 도입한 K방산의 '큰 손님'이다.
앞으로도 200억 달러(약 29조4천억 원)가 넘는 추가 물량 계약도 앞두고 있어 정부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성능이 검증된 폴란드산 '워메이트' 자폭 드론 200대를 구매하기도 했다. 이어 현재 운용 중인 잠수함이 지난 1985년 옛 소련에서 도입한 1척(ORP 오제우)뿐인 폴란드에 1993년 취역한 장보고함을 제공하는 카드를 통해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와 방산 협력 강화를 동시에 노렸다.
정부는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 과정에서 폴란드에 장보고함과 더불어 퇴역을 앞둔 울산급 호위함(FF·1500t급)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잠수함 사업 등은 도입국에서 수출 계약의 반대급부로 기술·인력 지원과 지식재산(IP)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관행이 있다. 우리 정부는 앞서 오르카 프로젝트 협상 과정에서 절충교역 차원에서 폴란드에 우리 해군의 장보고함을 무상 양도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보고함 제공 구상은 이전부터 논의됐다. 폴란드는 현재 노후 잠수함 'ORP 오제우' 1척만 운용하며 전력 공백에 직면했다.
이에 한국은 1993년 취역한 장보고함을 '가교 전력'으로 제시해 왔다. 정부는 당초 무상양도까지 검토했지만 이번 잠수함 수주전 결과를 반영해 정비비 분담 등을 추가하는 새로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퇴역 예정 울산급 호위함 제공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이번 결과를 '이별' 또는 '실패'보다는 '관계 유지'의 과제로 보고 있다. 폴란드가 K방산의 핵심 고객인 만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사브가 보여준 수준의 전략적 패키지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과제도 한층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정부·업계에서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날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사브의 패키지에 밀렸지만 폴란드와 맺은 장기 파트너십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며 "폴란드가 유럽 방산의 허브로 부상한 만큼 향후 사업에서 다시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럽 방산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앞서 사브가 보여준 것처럼 '전략적 패키지 경쟁'에도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이 부분을 신경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이번 수주 실패는 일시적인 것으로 폴란드와의 '관계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성근 기자
한화오션이 최근 폴란드의 대규모 잠수함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정부는 되레 퇴역 잠수함 '장보고함' 제공 방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폴란드가 K방산의 핵심 고객인 만큼 한-폴란드 관계를 강화하려는 정부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장보고함(SS-I)이 지난달 19일 진해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다. <해군>
2일 정부와 방산 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폴란드와 방산 협력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퇴역 잠수함 '장보고함(SS-I)' 제공 방안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앞서 한화오션은 폴란드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인 '오르카(Orka)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폴란드 정부는 치열한 6파전 끝에 최종 파트너로 한국이 아닌 스웨덴 사브(Saab)를 낙점했다.
이번에 선정된 사브는 1937년 설립된 스웨덴의 대표 방산 기업이다. 과거 자동차 제조사로 대중에게 알려졌으나 본업은 전투기 그리펜(Gripen)과 대전차 무기 NLAW, 칼 구스타프 등을 생산하는 북유럽 안보의 핵심 기업이다.
오르카 프로젝트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발트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폴란드 해군이 신형 잠수함 3척을 도입해 해상 방위력을 강화하려 추진하는 사업이다. 사업 규모는 약 100억 즐로티(약 4조239억 원)에 달한다. 유지·운영비까지 포함하면 8조 원에 육박한다.
이번 수주전은 세계 방산 강국들이 총출동했다. 한국의 한화오션을 비롯해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 스웨덴 사브,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스페인 나반티아, 프랑스 나발그룹 등 6개 업체가 참여해 각축을 벌였다.
한화오션은 장보고-III(KSS-III) 잠수함을 앞세워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의 긴 잠항 능력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기술, 납기 단축 능력 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납기 단축 능력은 K방산의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사브가 제안한 'A26 블레킹게(Blekinge)'급 잠수함은 수심이 얕고 염도가 낮은 발트해의 특수한 환경에 최적화된 모델로 평가받는다. 사브 측은 독자적인 '고스트(Ghost)' 기술을 적용해 피탐지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고 강조해 왔다.
고스트 시스템은 A26에 적용된 소음 및 진동 감소 기술들을 합친 것이다. 고스트 기술 덕분에 A26이 수중에서 멈춰있으면 적 구축함이나 해상초계기는 탐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울러 사브는 현지 조선소 투자, 유지보수 거점 구축, 폴란드산 무기 구매 등 '정치·산업·군사'가 결합 된 패키지 전략으로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폴란드 정부는 내년 2분기 최종 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수주전은 유럽 방산시장의 경쟁 양상이 이미 '패키지형 종합 제안'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풀이된다. 가격·성능 경쟁과 현지 생산·산업 투자·공급망 재편까지 포함된 복합형 경쟁이 표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한화오션은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패배했지만 이와 별도로 우리 정부는 폴란드와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부는 장보고함 제공을 '전략적 카드'로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서면 입장을 통해 "도태 잠수함 양도는 방산 수출 영향 등을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며 장보고함 제공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 폴란드 그드니아 항구에 도착한 K2 전차. <현대로템>
대통령실도 같은 날 폴란드가 한국이 아닌 스웨덴 방산기업 사브를 신형 잠수함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을 두고 "정부는 폴란드의 결정을 존중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방산 협력을 유지 및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며 한국-폴란드 방산 협력에 무게를 실었다.
폴란드는 2022년 이후 △현대로템의 K2 전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천무 다연장로켓 등 220억 달러(약 32조3400억 원)에 이르는 한국산 무기체계를 도입한 K방산의 '큰 손님'이다.
앞으로도 200억 달러(약 29조4천억 원)가 넘는 추가 물량 계약도 앞두고 있어 정부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성능이 검증된 폴란드산 '워메이트' 자폭 드론 200대를 구매하기도 했다. 이어 현재 운용 중인 잠수함이 지난 1985년 옛 소련에서 도입한 1척(ORP 오제우)뿐인 폴란드에 1993년 취역한 장보고함을 제공하는 카드를 통해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와 방산 협력 강화를 동시에 노렸다.
정부는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 과정에서 폴란드에 장보고함과 더불어 퇴역을 앞둔 울산급 호위함(FF·1500t급)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잠수함 사업 등은 도입국에서 수출 계약의 반대급부로 기술·인력 지원과 지식재산(IP)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관행이 있다. 우리 정부는 앞서 오르카 프로젝트 협상 과정에서 절충교역 차원에서 폴란드에 우리 해군의 장보고함을 무상 양도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보고함 제공 구상은 이전부터 논의됐다. 폴란드는 현재 노후 잠수함 'ORP 오제우' 1척만 운용하며 전력 공백에 직면했다.
이에 한국은 1993년 취역한 장보고함을 '가교 전력'으로 제시해 왔다. 정부는 당초 무상양도까지 검토했지만 이번 잠수함 수주전 결과를 반영해 정비비 분담 등을 추가하는 새로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퇴역 예정 울산급 호위함 제공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이번 결과를 '이별' 또는 '실패'보다는 '관계 유지'의 과제로 보고 있다. 폴란드가 K방산의 핵심 고객인 만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사브가 보여준 수준의 전략적 패키지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과제도 한층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정부·업계에서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날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사브의 패키지에 밀렸지만 폴란드와 맺은 장기 파트너십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며 "폴란드가 유럽 방산의 허브로 부상한 만큼 향후 사업에서 다시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럽 방산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앞서 사브가 보여준 것처럼 '전략적 패키지 경쟁'에도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이 부분을 신경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이번 수주 실패는 일시적인 것으로 폴란드와의 '관계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