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북항 신선대 부두의 전경. 선박이 접안한 곳에 안벽 크레인이 서 있다. 배후지 야드(장치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 BPT >
중국 항만들이 글로벌 컨테이너 처리량 상위권을 싹쓸이 한 가운데 부산항이 싱가포르항과 함께 세계 주요 항만 지위를 꿋꿋이 유지하는 데에는 '환적 수요' 덕이 크게 작용했다.
부산항의 모태인 부산 ‘북항’에 무인화·자동화·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항은 아시아 역내 인접국과 중소 도시로 향하는 컨테이너 물동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크레인, 항만 내 운반차량 등 기존 설비를 자동화·무인화하고,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선석을 추가 확보해 늘어나는 물동량에 대비하고 있다.
다가올 ‘북극항로 시대’에 중심이 될 부산항이 세계 항만 물류 시장에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부산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 부산항의 ‘모태’ 북항은 탈바꿈 중, BPT "2029년까지 1천억 원 투자"
지난 10월30일 부산항을 찾았다. 현재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류는 원도심(부산 동구·남구·영도구)에 위치한 ‘북항’과 2006년 개장해 현재까지도 확장이 진행 중인 ‘신항(부산 강서구·창원 진해구)’ 등 두 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 중 북항은 1894년 일본 주도로 근대식 항구가 조성된 곳으로 부산항의 모태인 곳으로 오랫동안 부산의 컨테이너 물류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다만 신항 개항으로 원양 컨테이너 물류 기능을 넘긴 북항은 인터아시아(동남아·중동), 일본·중국·대만 소규모 도시를 오가는 연안 컨테이너 물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항 컨테이너 부두는 컨테이너들을 크레인으로 선박에서 내리고, 각자 목적지로 향하는 선박이 올 때까지 야드에 두었다가, 접안한 선박에 컨테이너를 싣는 ‘환적 물류’를 수행하고 있다.
2025년 기준 북항의 중심지는 부산만 방파제 초입에 위치한 신선대부두, 감만부두 등 2곳이다. 기존 자성대 부두는 노무현 정부가 수립한 재개발 계획에 따라 부산 시민들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터미널 운영사 부산항터미널(BPT)는 2016년 신선대부두 운영사와 감만 부두 운영사가 통합해 출범한 법인으로, 북항을 물류의 선두에 선 기업이다.
BPT는 신선대 부두의 선석 5개, 감만 터미널 선석 2개 등 합산 7곳의 선석을 보유하고 있다. 북항의 2024년도 컨테이너 처리량 657만6천TEU 가운데 65%가량인 430만TEU가 BPT의 부두를 거쳤다.
홍콩에 본사를 둔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 ‘허치슨’이 180만TEU, 2025년 신항으로 이사 간 동부글로벌터미널(DGT)가 40만TEU를 처리했다.
이날 신선대 부두의 안내를 맡은 BPT 관계자는 “2016년 회사 출범 당시 300만TUE 수준의 연간 컨테이너 처리량은 신항으로 터미널이 이전한 뒤 잔류한 선사들의 물량을 유치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BPT는 지난 8월 진행된 부산항만공사 감만부두 2번 선석 입찰에서 운영사로 선정됐고, 내년 5월 가동을 목표로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BPT의 연간 460만TEU의 처리능력을 520만TEU로 늘릴 예정이다.
늘어나는 처리능력에 맞춰 항만의 컨테이너의 ‘순환(하역→장치→선적) 속도’를 올릴 예정이다. 선박의 대기 시간을 단축시켜 선사들이 운항일정을 준수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각 터미널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BPT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선적·하역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한 자동화 설비·소프트웨어,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운반차량(야드트랙터) 도입 등에 총 977억 원을 투자한다.
BPT 관계자는 “항만 장치장에서 안벽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옮기는 야드 트랙터의 회전율을 높여, 안벽 크레인의 적재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그런데 (회전속도가 느려 장치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장치율이 80%~90%에 이른다면 그게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회사의 주요 항만 설비는 △안벽 크레인 26대 △야드 크레인 72대(무인은 8대) △야드 트랙터 166대 △섀시(컨테이너를 싣어 트랙터와 연결하는 틀) 353대 등이다.
회사는 올해에만 △전기 야드 트랙터 20대 △컨테이너 집게(스프레더) 36대를 충원했다. 앞으로 △무인 야드 크레인 7대 △기존 유인 안벽 크레인 9대를 원격 조정 크레인으로 개조 △자율주행 야드트랙터 28대 △전기 야드트랙터 28대 등을 추가 도입한다.
설비뿐 아니라 항만 내 운영 시스템의 디지털전환을 통한 운영 효율 향상도 진행 중이다.
기존에는 종이 문서로 이뤄지던 트레일러 터미널 입출입 체계였지만, 특정 영역에 차량이 지나가기만 하면 GPS를 통해 이를 인지하고, 트레일러 기사에 휴대전화 메시지로 적재할 컨테이너 박스가 위치한 야드 구역을 안내하는 시스템을 부산항만공사와 함께 구축하고 있다.
BPT 관계자는 “터미널에서 ‘고속도로 요금소(톨게이트) 역할’을 하는 물리적 구조물(게이트)를 없앨 수 있는 시스템이 현재 이용률 83%까지 올라왔다”며 “모든 항만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안벽 크레인에 야드 트랙터가 위치하자 컨테이너 집게(스프레더)가 컨테이너를 들어올리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다. < BPT >
BPT 측의 터미널 소개와 향후 투자계획 등을 들은 후, 신선대 부두로 이동했다. 항만시설은 전쟁 발발 시 적국의 공격 대상 우선 순위에 드는 보안시설로 신원확인 절차가 꽤 까다로웠다.
길이 1.5km 신선대 안벽을 가로질러 가는데, 때마침 선석 5개 모두에 컨테이너선이 접안한 상태로 높이 50m, 무게만 120톤에 이르는 안벽 크레인을 통해 컨테이너의 선적·하역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드 트랙터 1대가 크레인 하부에 자리를 잡자마자 컨테이너 집게가 스윽 다가왔다. 박스를 들어 올려 선박의 적재공간 상부까지 이동하는데 약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과정이 이뤄지는 동안 박스를 빼낸 야드 트랙터는 다시 야드로 출발했고, 대기 중이었던 야드 트랙터가 앞 차가 정차했던 그 지점에 정확히 자리를 잡고 선적을 기다렸다.
최대 11만TEU를 수용할 수 있는 신선대 부두 야드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컨테이너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최종 목적지로 가는 선박이나 트레일러가 올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에서 컨테이너들이 머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컨테이너 트레일러 한 대가 야드 한 켠에 도착해 정차했다. 이윽고 무인 야드 크레인(ARMCG)에 장착된 컨테이너 집게(스프레더)가 위치를 잡고 천천히 하강했다.
컨테이너 박스 위로 약 1m 떨어진 위치에 20초 가량을 멈췄다. 집게는 정확안 위치를 잡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박스에 집게발을 고정시켰고, 이내 컨테이너를 들어 야드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았다.
회사 관계자는 “무인 야드 크레인 1대 도입을 위해 필요한 공간은 블록 4개 구역(블록 1구역 당 컨테이너 1000박스를 야적할 수 있음) 넓이로, (장치면적을 확보하는 것 보다) 무인 야드 크레인 하나를 도입하는 것이 항만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크레인 기사들의) 고용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24시간 쉬는 시간없이 가동할 수 있다”며 “장치장에서 수행하는 리핸들링(장치된 컨테이너들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은 시한이 임박해서 작업을 하거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반면 무인 크레인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지시를 무조건 이행하기 때문에 작업 효율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같은 구역에서 작업하는 야드 크레인들을 서로 성능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다. 같은 구역에서 어떤 야드 크레인의 작업속도가 뒤쳐진다면, 아무리 최신식 크레인이라도 그 작업이 끝날 때까지 대기할 수밖에 없어 제 성능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부산항 환적 물량 유치의 핵심 ‘중국보다 낮은 하역비용’, 현실화 필요 지적도
한국 최대의 항만 부산항은 최근 관세전쟁, 공급망 개편 등의 무역 분쟁의 격랑 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전체 물동량 2440만TEU 가운데 환적 화물만 1350만TEU로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주로 중국 보하이만(발해만)과 북동부 지역 항구를 출발해 부산항에 집결한 뒤, 미국 동·서부 해안으로 가는 물량이 환적 화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부산항은 다가오는 북극항로 시대에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북극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화물선이 마지막으로 기항하는 곳이 부산항이 된다"며 "아시아~미주뿐 아니라 아시아~유럽 노선 물류의 환적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항의 하역료는 1TEU당 3만 원 대 수준으로 중국 주요 항구보다 40% 저렴한 수준이다. 낮은 하역요금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환적 물동량을 유치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운임료 현실화를 위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목소리도 나온다.
항만물류 업계 관계자는 "부산 신항에서 터미널이 추가 개장하면서 하역료 인하 과잉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선적·하역 비용이 낮으면 선사들로서는 편한 부분이 있지만, 대규모 기간시설 투자가 필요한 항만으로서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이 기사는 재단법인 바다의품과 사단법인 한국해양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