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에 대해 엄격한 관리를 시사했다.

자사주의 건강한 처분을 통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발맞춘 조치인데, 발행-제동 가능성에 따라 투자 포인트가 달라질 수 있다.
 
금감원 자사주 교환사채 문턱 높여, '발행 예고' 테스 광동제약 무학 종근당홀딩스 성공할까

▲ 금융감독원이 상장사들의 자사주 EB 발행 문턱을 높였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0일부터 자사주 EB 발행시 공시의무를 강화했다.

자사주 EB 발행결정시 관련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기재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공시 작성기준을 개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금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주 EB 발행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우려를 표했다.

△기본적으로 자사주 의무소각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부합하지 않고 △교환권이 행사되어 자사주가 시장에 풀리는 경우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여타 자금조달 방식 대신 자사주 EB를 선택하게 된 경위와 근거가 시장에 충분히 알려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의무를 담은 법안이 곧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전 조치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EB 발행 이외에 자사주 처분 방법은 사실상 소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다른 자금조달 방법이 현저히 회사에 불이익하지 않은 경우, 지금 이 시점에 자사주 EB를 발행하여야 하는지를 심사숙고해달라는 취지로 읽힐 수 있다”고 평가했다.

즉, 앞으로 자사주 EB 발행의 명분이 빈약한 경우에는 금감원이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본래 배당을 통해 자신들 몫으로 귀속됐어야 할 자금을,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유용해놓고 이를 소각하지 않는 것은 꼼수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자사주 EB 발행도 마찬가지다. 결국 회사가 자사주를 본인들의 자금줄로 동원한다는 불만이 지속돼 왔다.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장사들은 이같은 변화를 이미 예상하고 자사주 EB 발행을 서둘러왔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EB 권리행사 건수는 124건으로 2분기와 비교해 163.8%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2분기 건수도 47건으로 1분기보다 193.75% 늘었다.

그런데 이제 금감원이 발행의 문턱을 높이면서 4분기부터는 자사주 EB 발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실제로 금감원에 의해 자사주 EB 발행에 제동이 가해지는 경우 주가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태광산업이 자사주 EB를 발행하려다 투자자 불만에 직면한 뒤 철회하자 주가가 상승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4분기 들어 자사주 EB 발행을 예고했으나 아직까지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 상장사는 현재까지 테스, 광동제약, 무학, 종근당홀딩스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이 자사주 EB 발행을 공시한 시점은 각각 22일, 20일, 17일, 15일이다.

우선 20일 금감원의 제도개편 이후 실제로 상장사들의 자사주 EB 발행 공시 내용이 보강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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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기업인 테스는 인공지능(AI) 산업의 발달로 투자 확대가 절실한 상황에서 자사주 EB 발행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테스>


예를 들어 테스는 여타 방법 대신 자사주 EB를 발행한 이유에 대해 “활용 가능한 조달방법에 대해 조달금리, 상환부담, 재무건전성 지표 관리측면 등 여러 사항을 비교 검토한 결과 보유 중인 자기주식을 활용하여 투자자금을 조달함으로써 금융비용 부담을 최소화 하고 현재 우량한 재무건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광동제약도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 보유 금융상품 처분 등을 통하여 자금을 조달하여 왔으나 매 사업연도 차입금의 증가 등 기존 자금조달 방식에 대한 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자금조달 방식의 다각화를 모색하였으며 자사 주식을 활용한 자금조달 방식을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이 우려되는 신주 발행방식이 아닌 타 자금조달 방식 대비 발행비용과 금융비용 절감 효과가 큰 자기주식을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하였다”고 말했다.

반면 20일보다 전에 발행 결의한 무학과 종근당홀딩스는 이와같은 내용이 없다.

다만 이처럼 상장사들이 자사주 EB 발행에 대한 명분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금감원 차원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금감원은 앞서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을 때, 주주가치 보호를 이유로 실제로 이에 제동을 걸어 무력화시킨 사례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 지배구조 사태는 전 정권 때였는데, 지금 정부와 금감원은 그보다도 훨씬 소액주주 가치를 중요시하는 상황”이라며 “상장사들의 자사주 EB 발행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