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싱가포르항에 수출차량을 가득 실은 화물선이 정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소세 시행에 반대하는 미국이 이를 지지하는 국가들을 제재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유럽연합이 이를 무시하고 시행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들 사이에 긴장이 크게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2차 특별 회기가 14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국제해사기구(IMO) 본부에서 시작됐다. 이번 회기는 17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회의에서는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부속서 6항 '넷제로 프레임워크' 채택 여부를 결정짓는 찬반투표가 진행된다.
국제해사기구 넷제로 프레임워크는 전 세계에서 운항하는 총톤수(GT) 5천 톤 이상 선박들을 모두 대상으로 삼는 프레임워크다. 여기에 해당하는 선박들은 지정된 한도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국제해사기구에 탄소세를 납부해야 한다.
한도를 초과한 선박들은 '개선 비용(RU)'를 지불해야 하고, 한도보다 적게 배출한 선박은 인센티브로 '잉여 비용(SU)'를 환급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넷제로 프레임워크는 올해 4월 런던에서 열린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정례회의에서 승인을 받았다. 이번 10월 특별 회기 찬반투표에서 최종 채택되면 16개월의 대기기간을 거쳐 2027년 3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미국은 넷제로 프레임워크 시행을 저지하기 위해 이번 찬반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는 모든 국가들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한 것으로 보고 강력한 제재를 단행하겠다고 공개 경고했다.
앞서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숀 더피 미국 교통부 장관 등은 11일 '유엔 최초의 글로벌 탄소세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는 제목으로 공동성명을 내놨다.
이들 장관은 "미국 행정부는 국제해사기구에 제출된 이 제안을 명백히 거부하며 우리 국민, 에너지 업체, 해운 회사와 고객들, 관광객들의 비용 부담을 높이는 어떤 조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우리는 10월 회의에서 우리 공동의 경제 및 에너지 안보를 위해 각 회원국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채택을 거부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 정부 장관들은 공동성명문에 넷제로 프레임워크에 찬성한 국가들에 미국이 어떤 제재를 단행할지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제재 조처에는 넷제로 프레임워크 찬성국 선박의 미국 항구 입항의 선별적 차단, 입항 수수료 증액, 미국내 상행위에 벌금 부과, 선박 승무원의 비자 발급 제한 등 강도높은 조치들이 포함됐다.

▲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로이터는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 영국, 중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한 넷제로 프레임워크 찬성 블록은 여전히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미국 정부의 성명이 나온 다음 날인 12일 공식성명을 통해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넷제로 프레임워크 찬반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줄 것을 촉구했다.
앞서 미국은 올해 4월에 열린 정례회의에서 넷제로 프레임워크가 안건으로 올라온 것에 반발해 중도이탈했으나 이번 찬반투표에는 끝까지 참석한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양측 입장이 첨예한 만큼 회의에서 긴장 수위는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외신들은 각국 정부뿐 아니라 해운업체들 사이에서도 표결을 앞두고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해운업체 대다수가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넷제로 프레임워크 시행 초기에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이 내놓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해운업계는 넷제로 프레임워크 시행 초기인 2028~2030년에 연간 약 120억 달러(약 17조 원)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행정부 장관들은 이런 해운업체 주장을 바탕으로 "국제해사기구 조치 시행으로 전 세계 해운 비용은 최대 1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조치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재앙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