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문직 비자' 압박 삼성전자도 영향권, 미국 반도체 공장 커지는 불안

▲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사업장에서 올해 여름 인턴 과정을 마친 대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전문직 비자’ 수수료를 대폭 상향하고 연방의회 상원의원까지 기업을 상대로 자국인을 고용하라며 압박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에서 수수료 증액 대상 비자를 받은 인력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데 불안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척 그래슬리 공화당 상원의원(아이오와)과 딕 더빈 민주당 의원(일리노이)은 24일(현지시각) 애플을 비롯한 기업 앞으로 비자 질문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과 외신들이 전했다. 

이들 의원은 기업이 다른 일자리는 줄이면서 H-1B 비자 인력을 계속 고용하는 이유를 물었다. H-1B 비자는 과학과 기술 등 특정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이민 비자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최근 미국 내 해고 증가와 자국민의 고용 기회 감소 원인을 전문직 비자에서 찾고 있다.

상원 사법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그래슬리 의원은 이번 서한을 통해 “미국인을 대량 해고한 뒤 수천 건의 H-1B 비자를 제출한 주요 기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서한을 받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신규 고용하거나 기한을 연장한 H-1B 비자 소지자는 각각 1만4667명, 5189명, 4202명이다. 

미국 연방정부 회계연도는 10월부터 다음 해 9월30일까지라 월스트리트저널은 해당 기간에 비자 통계를 조사했다. 

그래슬리 의원은 “회사에 채용 관행과 고용 정보를 요구했으며 H-1B 비자 소지자와 미국인 직원 사이에 급여나 복리후생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H-1B 비자 소지자를 고용하려면 기업이 기존보다 100배 가량 많은 1인당 10만 달러(약 1억4천만 원)의 수수료를 내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21일 0시1분부터 발효됐다. 

이에 애플이나 아마존 등 고용주는 H-1B 비자 인력을 추가로 데려오려면 막대한 금액을 낼 상황에 처했는데 의회까지 조사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H-1B 비자 문제는 최근 현대차그롭과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주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외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정치권이 기술 기업의 비자 상황을 사실상 전면 조사하는 분위기여서 앞으로 비자 발급 시 비용 부담은 물론 심사 기준도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24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 정부가 기술 산업에서 외국인 인재 고용을 막는 새 장벽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문직 비자' 압박 삼성전자도 영향권, 미국 반도체 공장 커지는 불안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이 실린 영주권 비자 프로그램 '골드 카드'가 19일 워싱턴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을 운영하고 테일러 지역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기술자 다수를 H-1B 비자로 고용하고 있어 거액의 수수료를 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매체 KUT뉴스는 25일자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가 2025 회계연도에 받은 H-1B 비자 신청 건수는 74건”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H-1B 고용 규모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비교해 적지만 반도체 인력은 상대적으로 현지 기술자를 구하기 어렵다.

루크 코슬로스키 조지타운대학교 안보연구센터 수석 연구자는 더힐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서 요구하는 기술을 갖춘 미국 노동자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공장은 최근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애플이 지난 8월6일 삼성전자의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해 공급받을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책임자(CEO)도 7월28일 삼성전자의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만들 자율주행용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잇따른 대형 수주 성과에 들떠 있는데 반이민 기조를 앞세운 트럼프 정부와 의회가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삼성전자는 미국 내에서 이미 오랜 기간 반도체 공장을 운영해 온 만큼 현지 인력 기반이 비교적 탄탄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998년에 텍사스 오스틴 공장 준공식을 열고 이후 29년 동안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들어 팔았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해야만 하는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인력 리스크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 반도체 육성 정책과 관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대미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더구나 삼성전자가 미국에 신규 공정 투자와 초기 양산 안정화를 위해서는 한국 본사의 핵심 파운드리 인력 지원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을 목표하는 테일러 공장에 최선단 공정인 2나노미터(㎚, 1나노는 10억 분의 1)를 도입하다는 구상을 내놨다. 

요컨대 미국 정부와 의회가 비자를 무기로 기업에 수수료를 더 걷거나 자국인 고용을 늘리라고 압박해 기술 인력이 필수인 삼성전자도 영향권에 들 공산이 크다. 

데이브 포터 윌리엄슨카운티 경제개발 파트너십 총괄은 KUT뉴스를 통해 “새 비자 규정은 텍사스에서 제조업 확장을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