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박영수 특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특검의 고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삼성그룹이 어떤 곳인가. 국내 재계순위 1위이자 글로벌기업이다. 더욱이 뇌물공여의 대상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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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특검의 삼성수사는 박근혜 게이트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시선이 쏠린 사안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앞으로 SK그룹, 롯데그룹, CJ그룹 등 다른 재벌기업 수사의 기준점인 동시에 결과에 따라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좀 더 멀리 다가올 대선에까지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나비효과’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특검도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과거 삼성 비자금수사 때 이건희 회장이 불구속기소되고 전문경영인만 사법처리됐던 것과 비슷한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돌았다.
그러나 특검이 결국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밝히자 재계도 이날 즉각 입장을 내놨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이 부회장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만큼 불구속수사가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범죄혐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수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업의 존망은 물론 한국의 국제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항변'했다.
경총은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정당한 사법절차를 통해 잘잘못이 엄정하게 가려지기를 바란다”면서도 “특히 의혹이 제기된 배경에는 정치적 강요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반응은 ‘대통령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고 피해자란 주장을 펼쳐온 삼성그룹과도 같은 논리다. 특검수사가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논리의 대전제는 '이재용=삼성=한국경제'의 등식이다.
물론 재계의 인식과는 상반되는 반응도 많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라’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이재용이 없다고 삼성이 망하지 않는다’ 등등.
야권도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며 이 부회장의 구속에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 부회장의) 구속수사없이 박근혜 게이트의 몸통에 다가가기는 어렵다”며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공범이다, 재벌이라고 법 앞에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논평했다.
국민의당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이고, 뇌물죄의 정점에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하지 않는다면 다른 구속된 피의자들은 모두 석방되어야 옳다”고 지적했다.
특검이 법과 원칙만을 생각하고 국민만을 바라봐야 하며 그것이 삼성도 국가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한 셈이다.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크게 보아 경제논리와 법(혹은 정의)의 논리가 상충한다. 특검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법원 역시 이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내부에서 의견도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앞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예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제논리와 법의 논리를 따로 떼어 생각해서는 안될 일이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야 말로 경제 혹은 기업경영에 위기를 가져온다는 사실, 지금까지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역사에서 확인된 것이자 이번 박근혜 게이트의 교훈이며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가 불러와야할 진정한 '나비효과'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