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신아 카카오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가 2023년 12월18일 경기 성남시 카카오아지트 3층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정신아 카카오 대표이사가 취임 다섯 달 뒤에 열린 카카오의 2024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한 이야기다. 카카오 모든 사업의 핵심인 카카오톡뿐 아니라 AI 역시 카카오의 핵심 사업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해당 발언으로부터 1년 뒤인 2025년 8월,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와 함께 그룹 차원의 스테이블 코인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던 카카오의 블록체인 사업이 다시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신아 대표는 인공지능과 스테이블코인, 두 가지가 미래 카카오 성장의 핵심적 동력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카오톡이라는 압도적 플랫폼 경쟁력을 기반으로, AI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 온디바이스 AI, “국내 최초” 선언과 그 뒤의 그림자
정신아 대표는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 경쟁력을 카카오 AI 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정 대표는 2025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카카오톡이 가진 메시지 역량과 특화 모델 라인업을 결합하면 에이전트 AI 플랫폼에서 카카오보다 강력한 사업자는 없을 것”이라며 “일부 모바일 디바이스 제조사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온디바이스 AI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기업은 카카오가 최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온디바이스 AI란 클라우드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 스마트폰, 태블릿, 웨어러블 기기와 같은 개별 기기 자체에서 인공지능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을 말한다. 클라우드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의 염려가 적고 응답속도가 빠르며 네트워크 의존도가 낮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야심찬 계획에는 몇 가지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온디바이스 AI의 구조적 약점과 카카오의 AI 경쟁력에 대한 의문점이 그것이다.
온디바이스 AI의 구조적 약점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단말기에서 개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델 오작동이나 악용 가능성 등 분산형 보안 위협 △해킹이나 불법 조작 위험 △하드웨어 성능 차이로 인한 사용자 간의 AI 격차 심화 우려 △구형 기기에서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유지관리 어려움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세 번째와 네 번째 약점이 카카오의 온디바이스 AI 계획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카카오톡은 메신저로서 역할만 수행해왔지만,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탑재하게 된다면 구형 기기에서 어플을 실행할 때 소위 ‘최적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카카오톡 앱은 직접 앱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백그라운드에서 실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살피면, 성능이 좋지 않은 구형 기기에서는 자칫 카카오톡 앱 때문에 기기 전체의 작업 수행속도가 느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아직 성과 보여준 적 없는 카카오 AI 모델, 온디바이스 AI는 다를까
한쪽에서는 카카오의 AI 역량에 대한 시장의 회의적 시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 대표가 최근 출시를 예고한 온디바이스 AI 서비스는 오픈AI의 인공지능 모델이 아니라 카카오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경량화 AI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카카오가 최근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 1차 평가에서 탈락하며 기술 경쟁력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네이버클라우드, SK텔레콤, LG, NC소프트 등 경쟁사들이 소버린 AI(독자적 AI 기술) 구현에 앞서가는 가운데 카카오는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해 외국 회사인 오픈AI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카카오는 자체개발 인공지능 모델과 관련해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여준 적이 없다”라며 “시장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카카오의 온디바이스 AI서비스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서비스가 아직 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적화 등과 관련된 이야기는 출시 시점이 되어야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스테이블코인, 독자 생태계 구축과 규제 속 변수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온디바이스 AI가 정신아 대표의 ‘단기 승부수’라면, 정신아 대표가 장기적으로 카카오의 먹거리로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카카오는 최근 정신아 대표를 비롯해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가 공동 TF장을 맡은 전사적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면서 발행·유통·결제·보관에 이르는 독자적인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재미있는 점은 네이버나 토스 등 경쟁사들이 두나무(업비트)나 빗썸 같은 기존 블록체인 기업과의 협력을 택한 것과 달리, 카카오는 독자 노선을 선택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톡이라는 삼각편대를 활용해 스테이블코인 유통망을 단숨에 확산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금융 인프라, 카카오페이의 결제 네트워크, 카카오톡의 플랫폼 파워는 카카오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카카오가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사업에서 업비트(두나무)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도 시장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카카오그룹의 투자전문 계열사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 10.59%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여전히 확실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카카오가 두나무와 직접 협력하기는 어렵다는 시선이 나온다.
특히 금융당국은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의 적격성 문제와 유통 구조 등을 엄격하게 따질 것으로 보이는데, 카카오가 간접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두나무와 손을 잡는다면 규제의 목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IT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규제 방향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장기적 접근이 불가피 할 것”이라며 “아직 아무와도 손을 잡지 않은 코인원 등과 협력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