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경영진과 주주 추천 사외이사 '원만한 동행', 우려했던 갈등 없었다

▲ KT&G는 지난 3월26일 대전 인재개발원에서 제38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사회의 주총 안건이 모두 원안대로 가결됐다. <KT&G>

[비즈니스포스트] KT&G가 회사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최대주주의 제안으로 이사회에 진입한 사외이사와 원만한 관계를 구축해 경영 안정성을 꾀하고 있는 모양새다.

외부 기관의 추천에 따른 사외이사가 18년 만에 탄생하면서 이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20일 KT&G 이사회 내역을 살펴보면 손동환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사회에 합류한 2024년 3월28일 이후 이사회에 올라왔던 안건은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지난해 4월 이후 연말까지 이사회는 모두 5차례 열렸는데 이사회 구성원 7명(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6명)이 모두 참석해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 올해 역시 상반기 7차례 열린 이사회에서 부의된 모든 안건은 이사회 구성원의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KT&G에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는 손동환 교수가 포함된 이사회에서 나온 결과로 보기에는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손 교수는 KT&G 이사회 산하 기구인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임된 사외이사가 아니다. KT&G 지분 7.79%를 보유한 최대주주 IBK기업은행이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인물이다.

최대주주라고는 하지만 KT&G와 IBK기업은행의 사이를 우호적이라고 보기만은 힘들다. 2017년 당시 백복인 전 대표이사 사장의 차기 사장 후보 추천과 관련해 IBK기업은행이 반기를 들었던 것은 둘 사이가 어떤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에는 KT&G 지배구조에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행동주의 표방 사모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가 IBK기업은행의 주주제안을 지지하기도 했다.

KT&G 관점에서 보면 IBK기업은행이 추천한 인물이 사외이사에 들어온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2월 손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면서 “경영진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회사에 조언할 수 있는 이사”라며 독립성을 지닌 인물이라고 부각했다.

IBK기업은행의 안을 지지했던 FCP 역시 “KT&G의 사외이사 6인 가운데 기업 출신은 4명에 불과하고 소비재 산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며 “이사회가 현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IBK기업은행이 사외이사 후보를 제안한 취지에 깊게 공감하여 손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며 KT&G와 각을 세웠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손동환 교수가 KT&G 이사회에서 회사의 안건에 찬성만 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과거 손 교수가 판사로 재직하면서 기업에 불리한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렸다는 주장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실었다. 손 교수는 2019년 12월 에버랜드 노조 와해 작업을 지시한 혐의(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전자 부사장과 에버랜드 전 전무에게 각각 징역 1년4개월과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담당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보험사들이 꾀병으로 몰아갔던 교통사고 후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들을 처음으로 구제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특정 질환의 발생 원인을 현재 과학 수준으로 명확히 해명할 수 없는데도 피해자에게 증명을 요구하면 법적 구제가 어려워진다”며 “사고로 충격을 입은 뒤 1개월 이내에 이 증후군이 나타났으므로 반대 증거가 없는 한 보험사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면서 기업의 논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관련 판례로 자리잡았다.

손 교수가 경영자의 관점에서만 사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무성했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이사회의 방향성에 좀처럼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수년 사이 KT&G가 FCP에서 지배구조와 경영을 놓고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이사회의 투명성에 공을 들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며 “내부적으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잡다 보니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회에 입성한 사외이사로서도 반기를 들 명분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KT&G 경영진과 주주 추천 사외이사 '원만한 동행', 우려했던 갈등 없었다

▲ KT&G는 2006~2007년 주주제안으로 들어온 사외이사 때문에 사사건건 경영간섭을 받은 바 있다.


방경만 사장이 2024년 11월 주주환원 확대를 뼈대로 하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을 발표한 것도 손 교수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으로 거론된다.

KT&G는 2024년부터 2027년까지 4년 동안 약 2조4천억 원의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 1조3천억 원 등 모두 3조7천억 원에 달하는 주주환원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2027년까지 발행주식총수의 20%를 소각하기로 했는데 이는 업계에서도 규모가 큰 주주환원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KT&G 이사회가 주주제안 사외이사와 예상 밖의 동행 행보를 보이는 것은 19년 전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이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 1명을 이사회에 진입시켰던 때와 180도 다르다.

당시 칼 아이칸은 미국 투자펀드 스틸파트너스를 이끌고 있던 워렌 지 리히텐슈타인 대표를 KT&G 이사회에 합류시켰다.

리히텐슈타인 대표는 당시 2년가량 KT&G 이사회에서 활동하면서 회사가 올리는 안건에 사사건건 목소리를 낸 것으로 파악된다.

자기주식 처분안이 보고됐을 때는 임원 보수와 관련해 전문기관의 객관적 검토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상임이사의 보수규정개정과 퇴직금규정 개정과 관련해도 반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절차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건강기능식품 사업과 관련한 설명회도 개최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