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클리오가 북미 소비자들을 겨냥해 올해 1월 20가지 색상의 ‘킬 커버 파운웨어 쿠션 디 오리지널’을 론칭했다. <클리오>
화려했던 색조 강자의 위상은 희미해졌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품력과 포트폴리오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위기감이 커진 클리오는 최근 전략 수정에 나섰다. 새롭게 주목받는 색조 브랜드 ‘티르티르’의 성장 방식을 벤치마킹해 글로벌 경쟁력 회복을 꾀하고 있다. 핵심은 현지 시장에 최적화된 제품 개발이다. 잃어버린 속도와 감각을 되찾기 위한 승부수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14일 클리오의 실적 흐름을 종합해보면 K뷰티 전성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포착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클리오는 그 파도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화장품 수출은 2023년보다 54.3% 늘어난 17억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 화장품 수입시장 1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클리오는 이 훈풍에서 한 발자국 비껴나 있다. 클리오는 올해 2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821억 원, 영업이익 35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1%, 영업이익은 63% 급락했다.
지난해 실적도 흐름은 비슷하다. 클리오는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3514억 원, 영업이익 246억 원을 냈다. 2023년보다 매출은 6.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7.2% 줄었다. 외형은 소폭 커졌지만 수익성은 뚜렷하게 악화됐다.
박은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해외시장에서 기초 제품은 다양한 신성분 기반 제품이 주목받고 있고 색조 제품은 용기 차별화를 앞세운 트렌디한 제품과 브랜드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며 “클리오 제품은 전반적으로 신선함이 부족해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주가 역시 내리막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13일 3만1400원이던 클리오 주가는 1년 만인 올해 8월13일 1만4790원으로 반 토막 이상 떨어졌다.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미미한 상태다.
클리오의 외국인 지분율은 4.25%에 불과하다. 아모레퍼시픽 23.10%, LG생활건강 26.91%, 에이피알 23.99%, 달바글로벌 9.36%, 에이블씨앤씨 8.30%와 비교해 동종업계 최하위 수준이다. 글로벌 시각에서 클리오의 미래 성장성과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클리오의 부진 원인으로 신제품 출시 둔화와 기존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 부족을 지목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의 제품 노후화가 뚜렷해지며, 정체의 흐름이 길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클리오의 올해 1분기 재고자산평가손실은 8억6천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0.4%나 급증했다. 최신 트렌드에 뒤처지며 쌓아둔 재고의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클리오의 경쟁사로 자주 거론되는 색조 브랜드 ‘티르티르’는 정반대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현지 맞춤형 색조 제품을 내세워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쿠션파운데이션을 시작으로 다양한 피부 톤에 맞춘 색상을 잇달아 출시하며 ‘모든 인종과 피부 톤을 위한 브랜드’라는 포지셔닝을 구축했다.
특히 대표 제품인 ‘마스크 핏 레드 쿠션’은 무려 45가지 색상으로 구성됐다. ‘AI 필터 쿠션’은 35개, ‘크리스탈 메쉬 쿠션’은 15개, ‘올커버 쿠션’은 27개 색상을 갖췄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도 마찬가지다. ‘레드 파운데이션’은 30개, ‘글라이드 앤 하이드 블러링 컨실러’는 20개 색상으로 선보이며 섬세한 피부 색 보정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 티르티르가 최근 미국 최대 뷰티 유통사 얼타뷰티의 400여 매장에 공식 입점했다. 사진은 얼타뷰티매장 내 진열된 티르티르 쿠션. <티르티르>
립 제품도 현지 맞춤형 전략을 반영하고 있다. 대표 립틴트 ‘워터리즘 글로우 틴트’는 본품 기준 15가지 색상으로 시작했으나, 지난해 6월 미주 시장 공략을 위해 미니 버전으로 30가지 색상을 추가로 선보였다.
이러한 전략은 즉각적 성과로 나타났다.
‘티르티르’는 미국 진출 1년 만인 지난해 4월 미국 아마존에서 K뷰티 최초 파운데이션 부문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6월에는 아마존 전체 뷰티 카테고리에서 색조 제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뷰티 유통사 울타뷰티 400여 매장에 공식 입점을 완료한 상태다.
이에 클리오 역시 ‘티르티르식’ 현지 맞춤형 색조 전략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유명 인플루언서나 할리우드 배우가 직접 제품을 사용한 사진을 올리는 입소문 ‘잭팟’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클리오는 올해 1월 미국 아마존에 ‘킬 커버 파운웨어 쿠션 디 오리지널’을 론칭하며 북미 전용 색상 20가지를 선보였다. 북미 소비자 피부 톤에 맞춰 색상 라인을 직접 개발해 출시한 첫 사례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자사 브랜드 페리페라를 통해 북미 전용 립틴트 제품을 출시하며 색상 다변화에 힘을 싣고 있다. 그동안 'K-뷰티는 동양인 전용'이라는 이미지에 머물렀던 색조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전환으로 해석된다.
하희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클리오는 미국 내 경쟁 심화로 소비자 유입이 둔화돼 성장률이 정체된 상황”이라며 “다만 향후 구달 제품군 확대 및 코스트코 온라인몰 입점, 색조 부문 확장을 통한 추가 성장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