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기도 평택항 부두에 4월15일 K5를 비롯한 수출용 기아 차량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는 관세 대응 차원에서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경쟁사보다 대미 투자를 서둘렀는데 피해가 현실화하는 시점을 맞아 당시 결정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10일(현지시각)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정부 관세로 올해 2분기 토요타와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완성차 업계는 모두 117억 달러(약 16조2600억 원) 타격을 입었다.
토요타와 폴크스바겐은 각각 30억 달러(약 4조1680억 원)와 15억 달러(약 2조100억 원)의 관세 부담을 떠안았다.
트럼프 정부가 완성차 공장이 많은 캐나다와 멕시코, 유럽을 상대로 올해 4월3일부터 품목별 관세를 부과해 타격이 불가피했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는 합산 11억8천만 달러(약 1조6400억 원)로 관세 여파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판매 규모에 비례해 관세 타격이 큰 것도 아니었다.
현대차와 기아 미국법인은 올해 2분기에 각각 23만5726대 21만7661대, 합해서 45만3387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같은 기간 폴크스바겐은 22만4700대의 차량을 북미에서 인도했다.
폴크스바겐과 현대차 모두 미국 현지 공장 외에도 독일이나 한국에서 차량을 제작해 수출하는데 관세 영향은 독일 쪽이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업체에겐 관세 영향을 줄이고자 현지 공장을 증설하는 선택지도 비용과 시간 문제가 큰 부담으로 작용해 딜레마를 안길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조사업체 오토포어캐스트솔루션의 샘 피오라니 분석가는 “신규 공장 건설에는 3~5년의 기간과 최소 10억 달러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존 공장을 재가동해도 5억 달러가 든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은 관세율을 낮출 수 있다면 미국에 100억 달러(약 13조8800억 원)를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7월28일 독일 뮌헨에서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을 실은 화물 열차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리버 블루메 폴크스바겐그룹 최고경영책임자(CEO)는 “관세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100억 달러 투자를 제시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고 경제전문지 포천이 7월25일 보도했다.
그러나 투자 규모와 시기를 확정하지 않아 미국 완성차 시장에서 당분간 관세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이 대미 신규 투자를 확정하고 공장을 짓기 시작해도 빨라야 2028~2029년에 완공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폴크스바겐과 올해 영업이익률 2위를 다투는 현대차에 반사 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이 크다.
현대차는 이미 미국 내 완성차 공급망 구축에 210억 달러(약 29조1800억 원) 투자를 확정하고 구체적 구상을 내놓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3월24일 미국 백악관을 직접 방문해 이런 투자 구상을 공개했다. 조지아주 공장 증설과 현대제철 제철소 설립 등 현지 ‘올인’ 전략으로 관세 영향을 줄일 밑그림을 이미 그려뒀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 순위에서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미국에 선제적 투자를 발판 삼아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은 한화로 150조616억 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으로 13조86억 원을 시현했다.
영업이익을 매출로 나눠 계산하는 영업이익률에서 현대차그룹은 8.67%로 토요타에 이어 올해 글로벌 완성차 업계 2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에 폴크스바겐은 영업이익률 4.27%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 등 공장에서 생산을 늘리고 대미 수출은 줄이는 등 생산 물량을 조정해 경쟁사보다 기민하게 움직여 관세 영향은 줄이고 영업이익률은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요컨대 현대차는 선제적 투자를 발판으로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유럽 완성차 업체보다 미국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이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9일자 기사를 통해 트럼프 관세로 미국 내 자동차 관련 물가 상승과 소비자 구매력 하락 등 악재가 겹쳐 중장기에는 현대차를 비롯한 모든 업체가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여기에 토요타는 이미 미국을 포함한 북미에서 연간 200만 대 정도의 생산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어 관세 영향에서 현대차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
미국 현지 투자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 토요타는 올해 4월23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위치한 공장에 8800만 달러(약 1220억 원)를 들여 하이브리드차 조립 라인을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