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5일(현지시각) 한 시민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거리에 설치된 물 분사 장치 아래 머물러 있다. <연합뉴스>
이에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기업들은 향후 배출량에 비례해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국제 법원은 정부나 기업 등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친 만큼 명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11일 글로벌 보험업계 발표와 국제기관 데이터를 종합하면 올해 글로벌 경제가 폭염으로 입는 피해가 수백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독일 재보험사 '알리안츠'는 지난달 글로벌 경제가 폭염으로 입을 피해를 전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알리안트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총생산(GDP) 성장률은 폭염 피해로 0.6%포인트 깎일 것이라 예측됐다.
세계은행 공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GDP는 약 11조3260억 달러(약 15경4587조 원)다. 이를 기반으로 GDP 성장률 0.6%포인트 감소분을 계산하면 손실액이 약 6600억 달러(약 916조 원)에 이른다.
이에 영국 기후연구단체 '카본브리프'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기업들은 이와 같은 피해에 실제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이 지난달 의견서를 통해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주체는 온실가스 배출자들을 상대로 피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도 공식성명을 통해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은 기후의무 위반시 완전한 배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여기에는 유해한 행위 중단 및 관련 손실과 피해에 대한 재정적 보상이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들도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만큼 향후 소송을 통해 배상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 국내 10대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로 입힌 손실을 금액으로 환산한 결과를 나타낸 그래프. 노란색은 한국전력 산하 발전사 5곳, 짙은 푸른색은 포스코가 끼친 손실에 따른 금액을 나타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영역은 정부가 기후대응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다한다면 줄일 수 있는 손실액을 나타낸다. <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한국 온실가스 다배출 상위 10대 기업의 누적 온실가스 배출 책임액은 약 161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적절한 기후대응 노력이 없다면 금액은 2050년까지 720조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기후솔루션은 이번 금액 계산을 위해 올해 4월 미국 다트머스대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등재한 보고서의 방법론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논문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1%당 약 5천억 달러(약 693조 원)에 달하는 세계 GDP 손실이 일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기후솔루션은 이와 같은 방법론을 적용해 2011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 배출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별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후피해 책임액을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기후변화 예측 모델을 활용해 2050년까지 배출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손실액 증가분도 산출했다.
국내 10대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은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온실가스 약 41억2천만 톤을 배출했고, 이에 따른 피해 책임액은 약 1196억 달러(약 161조 원)으로 집계됐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한국전력 산하 발전 자회사 5곳으로 합계 배출량 25억 톤, 손실책임액 약 729억 달러(약 93조 원)을 기록했다.
단일 기업으로 놓고 봤을 때 가장 배출량이 큰 곳은 철강사 포스코로 9억6천만 톤을 배출해 책임액은 281억 달러(약 38조 원)에 달했다.
기후솔루션은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이행한다면 720조 원으로 예측된 2050년 책임액이 약 300조 원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0대 다배출 기업이 잠재적으로 배상해야 할 수 있는 금액이 약 400조 원 이상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또 보고서에서 산정된 금액은 폭염 피해만을 포함한 것이라 향후 홍수, 가뭄, 산불 등 다른 기상 현상으로 인한 피해까지 반영된다면 액수가 훨씬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정호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 등 기후피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이는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에게도 배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처음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향후 폭염 외에 폭우, 홍수, 산불 등 다른 기후피해까지 포함된다면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한국 기업과 정부도 온실가스 배출에 선제적 대응과 실질적 감축 이행체계를 구축해 기후위기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