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경그룹이 원하는 금액에 애경산업을 매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실제 애경산업은 높은 중국 의존도로 지난해 실적이 크게 꺾였고, 화장품과 생활용품 전반의 업황 부진까지 겹치며 투자 매력은 한층 낮아졌다. 가격은 높지만 인수 메리트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선뜻 손을 내미는 주체가 나타나지 않는 형국이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 의견을 종합해보면 애경그룹은 항공과 화학 등 주력 계열사의 재무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 4월1일부터 애경산업 지분 63% 전량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최근 애터미가 애경산업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주장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됐지만 애터미는 즉각적으로 “인수 의사가 없다”며 관련 가능성을 일축했다.
애터미는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다단계 판매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 1조2096억 원, 영업이익 1795억 원을 기록하며 유통업계에서 보기 드문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한 내실 있는 운영이 강점으로 꼽힌다.
애경산업과 애터미는 모두 화장품과 생활용품 등을 주력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업영역이 겹친다. 하지만 두 회사의 운영 방식은 다르다. 애터미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대부분을 콜마홀딩스 계열사에서 공급받고 있다. 화장품은 한국콜마, 건강기능식품은 콜마비앤에이치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애경산업을 인수하게 되면 기존 유통 중심 사업에 제조 기반까지 더할 수 있다. 시너지 효과는 물론 생산라인 확보를 통한 생산 자립이라는 전략적 이점까지 챙길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애터미가 인수 가능성을 부인한 데에는 대규모 인수 자체에 대한 조직 내부의 부담감과 신중한 경영 기조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가능성은 있지만 당장은 아니다”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일부 중형 사모펀드(PEF)들이 애경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같은 회의론의 핵심에는 ‘실적과 기대 가치 간 괴리’가 있다. 애경그룹에서 제시한 몸값에 비해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애경산업은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6791억 원, 영업이익 468억 원을 기록했다. 2023년보다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4.4% 감소하며 수익성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
올해 1분기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애경산업은 올해 1분기 매출 1511억 원, 영업이익 60억 원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0.7%, 영업이익은 63.3% 줄었다.

▲ 애경산업이 중국 시장 부진으로 인한 실적 악화가 이어지며 기업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적 반등은 커녕 수익성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투자자 입장에서 인수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은 상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시가총액 3천억 원 수준의 애경산업을 애경그룹이 희망하는 6천억 원 선에 매수한다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외 해외시장에서의 성장은 나타나고 있으나 내수 및 중국 부진을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반기 기저효과로 인한 실적 개선 가능성이 존재하나 근본적으로 높은 중국 의존도 해소 여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글로벌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이 인수에 나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들은 충분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애경산업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실제 인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미 화장품 제조 역량과 자체 브랜드, 생산설비를 갖춘 대기업 입장에서는 애경산업을 품어도 시너지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의 경우 사정은 더 복잡하다. 다양한 고객사를 두고 있는 만큼 특정 브랜드를 인수할 경우 기존 고객사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사업 구조상 브랜드 인수에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전략적 접근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구조조정 부담과 통합 비용이라는 장벽이 크다. 단순히 브랜드 하나를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제 인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애경산업의 화장품사업 경쟁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 K-뷰티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디 브랜드들과 비교하면 브랜드 이미지는 노후화됐고 해외 경쟁력도 뒤처진다고 평가된다.
실제 애경산업의 대표 브랜드 ‘에이지투웨니스’는 중년 여성용 파운데이션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색조 브랜드 ‘루나’는 일본에서는 인지도를 쌓고 있지만 서구권에서는 여전히 존재감이 미미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경산업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이라는 이원화된 사업 구조를 갖고 있지만 실질적인 수익원은 생활용품 부문에 있다”며 “성장성이 제한된 현재의 사업 구조를 감안하면 전략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