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구자원 석방판결 '3+5 재벌양형' 부활  
▲ 구자원 LIG그룹 회장(좌)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우)

“고위층 비리 척결에 대한 희망을 깎아 내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집행유예 석방에 대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의 평가다.


이 신문은 11일(현지시각) 두 회장에게 내려진 징역형은 잘못을 저지른 재벌 총수들을 엄하게 벌하는 쪽으로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이번 판결은 이런 희망을 내동댕이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재벌 총수들의 잇단 범죄가 족벌경영 중심인 대기업들의 취약한 지배구조 기준에 대한 투자자의 우려를 높였다”면서 “한국 상장사들의 가치평가가 비교적 낮은 배경요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노력의 하나로 기업범죄에 더 강경한 자세를 약속했으나 이후 경제살리기에 역점을 두면서 경제민주화 약속이 무색해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구 회장과 김 회장은 지난 11일 똑 같은 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서울고법 형사5부(김기정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구자원 회장과 김승연 회장에게 똑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부실계열사를 부당지원해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9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됐다. 구 회장 역시 2000억원대 사기성 CP(기업 어음)을 발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징역 3년+집유 5년’ 재벌 양형 공식 부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은 피고인이 중죄임에도 불구하고 풀어줄 때 재판부가 선택해 온 양형이다. 과거 많은 기업 총수들이 비슷한 형을 받아 풀려나 ‘재벌 양형공식’으로 불렸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대학생들에게도 재판부는 이런 양형을 선고해 풀어줬다.


그동안 법원은 2012년 8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김승연 회장을 법정 구속한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 총수 비리에 엄벌주의 기조를 유지해 왔다. 지난해 1월에는 465억원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고령인 구자원 LIG 그룹 회장 역시 법정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재벌 양형공식’이 깨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두 회장이 모두 이른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판결을 받으면서 재벌 양형공식은 다시 부활하고 말았다. 특히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판부의 기조가 엄벌주의에서 선처주의로 바뀔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새해 국정 목표를 경제활성화에 맞춘 만큼 재판부 역시 재계의 입장을 감안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보도에서 "법원이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에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의 분석을 전했다.


이날 판결문에는 ‘경제발전 기여 공로’, ‘경영 공백 우려’ 등 과거 그룹 총수들의 경제범죄에 대한 판결문에 자주 언급됐던 용어들이 다시 등장해 재판부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보여줬다. 재판부는 김 회장에 대한 양형 이유를 “그동안 나름대로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공로를 참작했다”고 밝혔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최근 경제살리기에 무게가 실리면서 법원 양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며 “그러나 LIG그룹 사건의 경우 장남 구본상 부회장과 1심에서 무죄였던 차남 구본엽 전 부사장까지 법정구속돼 양형이 약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 정몽구 회장도 거쳐 간 ‘3+5’ 공식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총수 전용 양형공식을 적용받았던 사건은 많다. 이전에도 많은 대기업 총수들이 비슷한 양형이 적용돼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6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됐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사건이다. 정 회장은 회사돈 900억원 가량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100여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이 인정됐으나 2007년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정 회장은 특히 구속기소된지 61일 만에 보증금 10억원에 보석을 허가한 재판부의 결정에 따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재벌 특혜’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앞서 2008년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됐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역시 1100억원대의 탈세와 배임이 인정됐으나 2009년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139일만에 특별사면 됐다.

2006년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역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뒤 상고를 포기해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보다 앞선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으나 2005년 항소심을 통해 결국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판결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