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황우석 박사가 영롱이를 쓰다듬으며 미소짓고 있다. |
1999년 2월19일 서울대 수의과대 황우석 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영롱이’ 젖소가 탄생했다고 발표했다. 젖소로는 세계 최초고, 체세포 복제는 영국 복제양 ‘돌리’ 이후 세계에서 5번째였다.
영롱이는 보통 젖소보다 3배나 많은 연간 1만 8천kg의 우유를 생산하는 파워젖소다. ‘영롱이’는 황우석 교수의 명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시발점이 됐다.
황 교수는 “돌리 복제와 같은 방식(개체의 유전형질을 그대로 간직하는 체세포 복제술)을 사용했으나 세포 배양단계에서 염색체 검사 등을 벌여 유전성 기형이나 전염성 질병들을 미리 제거하는 새로운 기술을 추가했다”며 진일보된 동물 복제 기술임을 밝혔다. 핵을 안전하게 꺼내기 위해 새로운 '젓가락' 기술을 창안했고, 세포융합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최적의 전기자극의 횟수와 시간도 밝혀냈다.
영롱이의 탄생은 10년 밖에 안 되는 한국의 동물 복제 연구가 선진국과 나란히 하게 됐음을 알리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 성공은 황 교수가 BK21사업, 농림부, 삼성그룹 등 각계로부터 많은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영롱이의 탄생을 계기로 황 교수는 '생명공학계'의 기린아로 대접받으며 승승장구 했다. 2004년 2월 황 교수가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해 '국민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논문조작 의혹이 제기됐고 2005년 12월 서울대 조사에서 논문이 고의로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황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자 지위와 서울대 교수직을 모두 박탈당했다. 그 뒤 황 교수는 연구비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영웅의 추락이었다.
영웅의 추락과 함께 영롱이의 탄생도 의심을 받았다. 체세포를 제공한 어미 소가 도축되고 없다는 사실, '영롱이'에 대한 연구논문이 한 편도 없다는 점, '영롱이'에 대한 논문이 없다는 사실 등이 의심의 근거였다. 황 박사는 2005년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미 외국의 다른 연구실에서도 동물복제에 대한 성과가 나와 있어 영롱이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를 해도 과학 저널에 실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진실은 여전히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