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리포트 3월] 배당과 금수저, 하이패스 경영이란 없다

▲ 회사는 주주, 임직원, 소비자라는 3각이 서로 대칙점을 그리며 상호 협력하고 대립하고, 연계하며 진화해간다. < Freepik >

[비즈니스포스트] 몇 년 전. 중견기업의 주주총회(이하 주총) 날. 본사 대회의실은 오전 10시 주총을 앞두고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주총 진행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회계연도 결산 및 감사보고, 이사 및 감사 선임, 그리고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의 절차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흘러갔다.

미리 꽂다 놓은 주주가 찬성하고, 이를 이어받아 또 다른 주주가 재청하면, 의장은 반대 의사가 없냐며 단상 아래를 두리번거렸다. 참석 인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없다”라고 말하면 위의 안건들이 가결됐다.

이날은 또 다른 의미에서 약간 특별한(?) 주총이었다. 바로 오너(회장) 아들이 등기이사로 취임하는 날이었다. 문제없을 것이라는 주변의 말에도 아들은 대기실에서 긴장 탓인지 버릇처럼 약지와 중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옆에 있던 전무가 황급히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밖으로 뛰어나가, 뭔가를 찾았다. 주총 진행을 돕던 직원들은 당황했다. 은행권 출신에 탁월한 재무능력으로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고, 표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그이기에 “왜? 저렇지”라는 의문을 가졌다.

얼마 뒤에 그 내막이 알려졌다. 그가 찾던 것은 담배였다. 자신보다 열다섯이나 어린 오너 아들을 위해 백방으로 담배를 찾았던 것이었다. 

이날 주총에서 가장 중요한 배당금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없었다. 지난해 실적이 좋았으니, 내심 올해는 배당금이 더 많을 것으로 기대하던 개인투자자들은 전년과 똑같은 연간 배당금(주당 500원)에 쓸쓸히 자리를 일어나야만 했다.

물론 손을 들고 항의하는 이도 있었지만, 내년 업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장의 말에 묻혀 잦아들 수밖에 없다. 

이 주총에서 두 가지 문제를 읽을 수 있다. 왜 기업은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들의 이익을 챙기지 않는 것이며, 중견기업 오너의 아들은 어떤 경영능력이 검증되어서 사내이사로 임명됐느냐 하는 것이다.

아들은 외부 컨설팅이나 증권 회사에서 나름대로 경영에 대한 지식을 쌓은 적이 없다. 입사할 때부터 계열사 임원으로 들어와서는 몇 년간 별다른 실적 없이 자리만 지키다가 이날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 회사의 주인은 주주, 마땅히 배당에 신경써야

현실을 감안하면 이익이 날 때마다 배당을 진행하는 중견기업 오너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자금경색이 될 때를 대비하기 위해 이익잉여금의 형태로 사내에 쌓아 놓는다.

비상장주식 가치평가가 상승하게 되고, 이는 곧 상속 및 증여세 등의 세금 부담을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배당은 대기업의 전유물이라고 치부하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국내의 주식 투자자들이 배당보다는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식을 산다면 미국의 투자자들은 배당수익을 노리고 주식을 산다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는 최소 25년 이상 연속해서 배당금을 올린 기업들을 ‘배당챔피언’이라고 하는데, 대략 130여 개에 이른다. 이에 반해 국내 회사들은 배당에 인색하다. 주요 상장사들의 평균 배당률은 2∼3% 수준이며, 한국 기업의 배당성향은 몇 년째 OECD 국가 중 바닥권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주환원정책이 기업 이슈로 자리 잡으면서 배당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IT와 바이오기업을 중심으로 회사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를 하고, 지분을 가진 재무적 투자자의 요구에 따라 주주환원정책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상대적으로 밸류업과 배당성향에 뒤쳐져 있는 집단군이 유통업계와 제약업계다. 그런데 최근 이들 업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유통주 소액주주들은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도 주가 저평가가 심화되자 주주환원 요구를 담은 주주 제안을 본격화하고 있다.

롯데쇼핑, 이마트, 농심 등의 소액주주들은 주주행동 플랫폼을 중심으로 연대해 주주제안 서한을 발송하고 정기주총에서 안건 상정을 예고하는 등 행동주의를 개시할 것을 밝혔다. 이들은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개선과 함께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고, 소극적인 배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연 매출 1조원 이상 5대 제약사들도 배당에 인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배당 시즌마다 주주 게시판에서는 5대 상장 제약사의 주당배당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자공시스템에 공시된 올해 주요 제약사들이 결정한 배당금을 살펴보면 유한양행이 450원에서 500원으로 올렸고, 대웅제약(600원)과 녹십자(1500원), 종근당(1100원) 지난해와 동일하다. 

시가배당률은 종근당 1.2%, 녹십자 0.9%, 대웅제약 0.5%, 유한양행 0.4%에 그쳤다. 유일하게 아직 배당금 규모를 발표하지 않은 한미약품은 지난해 결산배당(주당 500원) 기준 시가배당률이 0.14%에 불과했던 만큼 이번에도 최하위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데스크 리포트 3월] 배당과 금수저, 하이패스 경영이란 없다

▲ 기업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묶여 있다. 여러 갈등이 얽혀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도 저마도 다르다. < Freepik >

◆ 태어나보니 임원, 무게감을 실력으로 보여야

기업이 하나의 성(城)으로, 오너가 권좌에 있는 군주로 등가식을 대입하면 아비를 잘 둔(?) 아드님이나 따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다지 좋은 소식은 별로 없다. 아비가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힘들게 키운 회사에서 지식은 누구보다 초고속 승진으로 임원이 된다.

계열사 임원으로 입사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인 일감 밀어주기와 계열사 분할 및 합병으로 어느 순간 회사의 지분이 야금야금 자식에게 넘어간다. 조금 잘 나간다는 계열사, 특히 비상장회사 지분이 아비보다 많아진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국내 중견그룹 오너일가는 입사 후 임원을 달기까지 평균 3.8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임원이 된 중견그룹 오너일가는 총 33명으로 전체 32.7%의 비중을 차지한다.

대성그룹이 4명으로 가장 많았고 SPC가 3명으로 뒤를 이었다. 콜마, 동아쏘시오, SD바이오센서, 대웅 등 22개사도 1명을 기록했다. 

이 중에서 입사 후 바로 임원에 오른 중견그룹 주요 오너도 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장남 허진수 SPC그룹 사장, 차남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각자 29살, 30살의 나이였던 2005년과 2007년에 파리크라상 상무로 입사했다. 이들은 모두 파리바게트 해외시장 진출과 새로운 브랜드의 국내 진출에 앞장섰다고 하지만, 아버지 후광으로 쌓아오는 탑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허 사장은 파리바게뜨 해외진출을 주도하는 등 그룹 내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흑자를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매장을 늘리며 전반적으로 매출은 증가하고 있지만 적자는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파리크라상 미국법인의 경우 지난 2023년 32억5900만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허 부사장은 미국 버거 브랜드 쉐이크쉑을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 외에 ‘애그슬럿’, ‘크래프트하인즈’ 등을 국내 도입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더구나 배스킨라빈스와 던킨 등을 운영하는 비알코리아가 지난해 29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것은 경영능력을 의심케하는 요인들이다.

SPC그룹 내에서 두 형제의 위상은 점차 강화되고 있다. 허 사장은 아버지인 허 회장 지분을 이어받아 파리크라상과 SPC삼립 주요 주주로 자리하고 있으며, 허 부사장 역시 그룹 지분 구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SPC삼립의 최대주주는 파리크라상으로 40.66%를 차지하고 있으며, 허영인 회장이 4.64%를 보유하고 있고, 허 사장이 16.31%, 허 부사장이 11.94%를 각각 갖고 있다. 실질적으로 SPC그룹의 정점에 있는 파리크라상은 허 회장이 63.3%, 아내 이미향씨가 3.5%, 허 사장이 20.3%, 허 부사장이 12.8%를 갖고 있다. 장원수 유통&4차산업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