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현지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전면 재검토, 지급 조건을 바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패키징 공장을 건설키로 하면서 바이든 정부로부터 각각 6조9천억 원, 6600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이같은 보조금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두 회사는 미국 공장 건설 투자의 경제성을 다시 살펴봐야할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수입 반도체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미국 수출이 많은 두 기업이 현지 공장 건설을 전격 취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 '진퇴양난' 형국에 빠진 모양새다.
로이터는 13일(현지시각) 트럼프 정부가 기존 ‘반도체 설비투자 보조금’ 정책을 재검토하는 동시 투자 기업들과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며, 관련 보조금 지출 일부를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대만 실리콘 웨이퍼 제조사 글로벌웨이퍼스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반도체법 프로그램 사무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보조금 계약 조건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보조금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47억4500만 달러(약 6조9천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미국 인디애나주에 AI 반도체 패키징 생산설비를 건설하기로 하고 4억5800만 달러(약 6600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 조건이 변경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기존 미국 투자 전략을 바꿔야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가동 시점을 기존 2024년에서 2026년으로 미뤘는데, 보조금 지급 조건 변경에 따라 가동 시점을 더 미루거나, 투자 규모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아직 미국 반도체 패키징 공장 착공을 시작하지 않은 만큼, 보조금 지급 여부에 따라 기존 계획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높아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보조금을 안 준다면 투자 전략을 재검토할 수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불확실성이 증대돼 우리의 행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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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미국 설비투자 전략을 다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가 미국에서 제조되도록 해야 한다”며 “반도체가 대부분 대만에서 생산되고, 약간 한국에서 생산된다. 우리는 그 사업이 돌아오길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만에서 수입하는 반도체에 최고 100% 관세 부과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에도 이 같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다소 생산비가 높아진다고 해도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이 유리해질 수 있다.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는 아시아보다 30%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관세를 피할 수 있는 데다 주요 고객사인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물류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트럼프 정부의 구체적 반도체 보조금 축소 내용이나 관세 부과 모두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아직 미국 정부 입장이 확정된 게 없는 만큼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다만 관세 부과 등으로 반도체 공급 단가가 올라간다면 결국 주요 반도체 고객사인 미국 기업들의 비용 증가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합리적 결론이 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첨단기술 정책연구소(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반도체 제조업체는 투자할 때 인재, 세금, 무역, 기술 정책과 규제, 환경과 노동 시장을 포함한 최대 500가지 요소를 세심하게 평가해 결정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관세만으로는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고, 게다가 모든 수입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한다면 세계적 맞대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